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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485
한자 鄭元澤
영어음역 Jeong WontaeK
이칭/별칭 지산(志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
성별
생년 1890년연표보기
몰년 1971년연표보기
본관 영일
대표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지산(志山). 아버지는 정운한(鄭雲漢)이다.

[활동사항]

정원택은 1911년 김교헌(金敎獻)·김유근(金柳瑾)을 만나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상해로 건너가 신규식(申圭植)이 이끄는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間島)·노령(露領)에서 인수하여 전달하였으며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조직에 참여하여 서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4월 의군부의 기밀사(機密事)로 상해에 출장하여 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길림(吉林)의 상황을 보고하고 국내에서 새로 온 청년들에게 폭탄 제조법을 가르쳤다. 1919년 4월에 개최된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원 회의에 참석하였다. 임시정부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신규식(申圭植)·조소앙(趙素昻) 등 임시정부 지도부의 지시를 받고 의정원 의원인 김덕진(金德鎭)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서울에 사는 정두화(鄭斗和)와 접촉하기 위해 귀국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저술 및 작품]

일기로 『지산외유일기(志山外遊日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77년과 1990년 대한민국 건국포장과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이 각각 추서되었으며,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에 공적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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