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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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郡廳防火事件 |
영어의미역 | Chungju-gun County Office Attack of Red Guerrillas and Restoration of Government Office Buildings |
이칭/별칭 | 공비의 충주군청 내습과 청사복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일성 |
성격 | 공비침투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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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2년 11월 3일 |
종결연도/일시 | 1953년 10월 3일 |
발생(시작)장소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
관련인물/단체 | 김학규|정희택 |
[정의]
1952년 11월 3일 북한 공비의 습격과 방화로 충주군청이 불탄 사건.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점령한 후 계속 남진하여 7월 초 충주를 함락하였다. 북한군은 여세를 몰아 낙동강 전선에서 총공세를 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그해 10월 1일 유엔군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하여 진격하였다.
낙동강 전선에 있던 북한군은 북으로 돌아가는 길이 차단되어 미처 북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국군을 피하여 험한 산악지대를 근거로 숨어서 활동하였는데, 이들을 공비라고 하였다.
당시 월악산에 숨어서 활동하던 일단의 공비는 국도 3호선상의 고개인 소조령에 나타나 지나가는 차량을 붙잡아 식량을 약탈하였을 뿐 아니라, 인근의 문경·괴산·제천·충주 등지에도 출현하여 주민을 괴롭히며 사회 혼란을 야기하였다.
[경과]
1952년 11월 3일 야음을 틈타 월악산에 숨어 있던 공비들이 월악산에서 신당, 발티를 넘어 용산동을 지나 성내동에 있는 충주군청까지 진출하여 총을 쏘며 방화했다. 충주군청은 1933년 김학규(金鶴圭) 군수 때 지어진 건물이었다. 당시 용산동(지금의 영진아파트)에는 미군 통신부대가 주둔하여 남산 정상에 기지를 설치하고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결과]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정희택(鄭喜澤) 군수가 부임하여 1953년 10월 3일 건평 136평, 총공사비 449만 원(국비보조 231만 원, 지방부담 170만 원)으로 현대식 건물의 새로운 청사를 준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