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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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重周 |
영어음역 | Hong Jungju |
이칭/별칭 | 성범(聖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범(聖範).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아버지는 이천부사 홍만운(洪萬運), 어머니는 군수 정하(鄭何)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활동사항]
홍중주는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4년 사간원정언이 되어 장희재(張希載)와 이의징(李義徵)의 일에 대해 “장희재의 죽음을 용서해 준 것은 진실로 깊고 원대한 생각으로 한 일입니다. 이의징은 이미 역적이란 누명을 국청(鞫廳)의 의계(議啓)에서 벗게 되었으니, 극률(極律)에 처하려고 하는 것은 어찌 너무 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숙종에게 아뢰었다.
이에 정언 임원구(任元耉)가 숙종에게 “장희재와 이의징은 국법에 반드시 베어야 할 사람인데, 전 정언 홍중주가 사심을 품고서 악인과 편당하느라, 인피(引避)하는 말에 감히 대론(臺論)을 이미 심한 것이라고 했으니, 청컨대 파직하고 서용(敍用)하지 마소서.”라고 하여 탄핵을 당하였다.
1708년 세자시강원필선이 되고, 1709년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었다. 1716년 제주목사가 되었을 때 제주도가 흉년이 든 상황을 글을 올려 곡물을 얻기를 청하자 숙종은 조정에서 호남에 있는 강도미(江都米) 3천 석과 어영청의 호남 연해 군보미(軍保米) 3천 석을 각 진포(鎭浦)의 병선을 징발하여 기일을 정하여 제주도에 보내도록 명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다.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가 묘갈을 찬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