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C02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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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호 |
제내리에서는 일찍부터 경로잔치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937년 11월 5일 방풍림계에서 경로잔치를 베푼 이후 간간히 이어오다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로 효친을 위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은 남달랐다. 그리하여 1978년 3월에는 경로당을 세우자는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하였다.
각 반장과 청년회원을 위원으로 하여 이복영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농번기에 겹쳐 추진이 미미했던 모금사업은 그해 11월 23일 강릉의 이달영(동인의원 원장)이 계몽회원들의 기념사업으로 경로당을 짓기로 하고, 백만 원을 희사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본격화 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1월 31일에는 이상갑이 종중의 미나리 광을 경로당부지로 희사하기로 하였다. 1980년 2월 27일 부락 총회에서 추진위원회를 재조직하고 이세영을 위원장으로 삼아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하였다. 청주의 이정영이 설계도를 작성하여 오니 3월 5일부터 부지 정리에 들어갔다. 3월 25일 주덕면에서 새마을 사업 일환으로 시멘트 220포를 보조해 주었으며, 4월 1일 백회 120포를 구입하여 직접 마을 주민들이 벽돌을 찍었다. 목재는 미루나무와 낙엽송 등을 한두 주씩 기증받아 충당하였다. 이와 같은 마을 주민들의 노력과 봉사의 결실로 마침내 9월 25일 준공을 보게 되었다. 총공사비가 4,043,700원으로 새마을 시멘트 220포대, 목재 2,200재, 마을 주민들의 노력부담이 연 306명이었으며, 공사비는 72명의 독지가들이 낸 성금으로 충당하였다.
이후 풍덕 경로당은 노인들의 전용공간으로 활용되며, 경로효친의 실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경로잔치 또한 경로효친 사상을 실천하는 마을 주민들의 행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37년 방풍림계에서 경로잔치를 시행한 이후 간간히 이어 왔으나 6·25 이후 경로사상이 희박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온 주민들이 도의 앙양과 애유의 정신을 고취하고자 1952년 봄 집집마다 쌀 2되씩을 거두어 4월 8일 마을 전체에 큰 잔치를 열었다. 이것을 계기로 마을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의례 경로잔치를 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정례적인 행사가 되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새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원들이 주관하는 경로연이 베풀어지고 있다. 이 날은 척사대회와 함께 마을 잔치가 이루어진다.
경로효친이란 노인을 존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뜻이지만, 이 말의 참뜻은 ‘노인공경하기를 부모에게 효도하듯 하라’는 데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효(孝)의 완성도 사친(事親)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이웃 어른들에 대한 공경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사군(事君)에 대한 충성으로 이르게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효경에서는 군자(君子)교육에서 효(孝)의 목표가 입신(立身)에 있고, 입신의 경지는 사친에 대한 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까지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내리의 경로효친 행사는 비록 씨족마을이라는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가정에서 행해지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심이 울타리를 넘어 이웃의 노인들을 부모처럼 공경하라는 실천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가정교육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인격교육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