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D01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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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어경선 |
1910년을 전후하여 연초제조업이 크게 일어나 담배 연료인 황색종 잎담배의 수요가 급증하자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는 황색종 재배를 계획하고 1910년 12월부터 산지조사를 실시했다. 1912년 황색종 산지 선정 당시의 조사에서도 충주는 미국의 황색종 산지인 버지니아주와 위도가 같고 농작물에 큰 피해를 미치는 기후변동이 없었고 교통도 편리한데다 상당한 면적의 대평야는 지형과 배수가 양호하여 황색종 산지로는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하여 1912년에 충주에 사세국 출장소를 개설하여 251명의 경작인에게 황색종 14.7ha를 무료로 공급하였고, 대금을 지급하여 촌락 경작을 시킨 것이 우리나라 황색종 재배의 시초가 되었다.
그 이후 충주 지역에서 황색 연초의 재배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목계에도 1920년대에 연초조합이 설립되게 되었다. 일제는 1940년 이래 담배, 소금, 홍삼 등을 국가의 전매품으로 확정하였다. 또 충주 인근 지역을 엽연초 주산지로 육성하여 생산량의 증대를 기하였다. 이때 목계에는 엄정, 소태, 가금, 산척, 백운, 부론, 귀래 등 7개 면의 엽연초를 수집하기 위한 담배 수납장이 설립되었다.
이를 통해 목계에서는 매년 수납 시기인 9월부터 5~6개월간에 인근 지역의 담배를 수납함으로써 막대한 자금이 유통되었고, 수납장 근처인 중계마을에는 색시를 둔 주막집들이 일시적으로 늘어섰다고 한다.
‘목계별신제줄다리기유래비’ 앞에 거주하는 ‘윤우식’ 씨를 통해 담배 수납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담배 수납장은 6·25전쟁 때 불탔다고 한다. 1·4후퇴 때 미군 8사단이 목계에 주둔하면서 귀래에서 전투를 하였다. 그때 담배 수납장에 실탄, 폭탄 등을 쌓아두었는데 보초를 서던 군인의 실수로 불이 나서 실탄이 터져서 우당탕 소리가 났으며, 그 바람에 수납장이 완전히 불타버렸던 것이었다. 1950년대 말 미군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수납장 건물 일체를 재건축하여 주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건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 윤우식 씨는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어찌되었던 목계 수납장은 1990년대까지 충주 북부 지역의 담배 수납 업무를 맡아오다가 담배 경작이 줄어들면서 그 업무가 충주 수납장으로 이전되었다. 그 후 수납장 건물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가 유물 복원 작업을 하는 윤광주라는 분이 ‘고고문물 복원연구소’를 설립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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