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D01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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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어경선 |
1945년 당시 충주 인근에서 벌채한 목재를 동량면 조돈나루에 모아 뗏목을 만들어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였다. 이때 뗏목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목계마을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았고 아들인 권태희 씨의 죽마고우이기도 한 조일상 씨를 통해 권중대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군청에 근무하던 권중대(權重大)[1901년생] 씨를 목계마을 주민인 윤해영, 김현영, 신도일 등이 찾아가 뗏목 만드는 작업을 목계에서 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권중대 씨는 건의를 받아들여 목계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의 수입도 늘어났고 목계마을 기금도 조성할 수 있었다.
권중대 씨의 아들인 권태희 씨가 휘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광복 후에는 권중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을 흠모하여 동지로 활약하였고, 그래서 백범의 친필 휘호(揮毫)를 선물로 받으셨다. 또 백범 선생님이 목계까지 다녀가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으나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고 한다.
휘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중대 동지 기념(權重大 同志 紀念)
충효전가(忠孝傳家)
대한민국 31년 74세 백범 김구 4월 11일 임시정부헌법반포기념(大韓民國 三十一年 七十四歲 白凡 金九 四月 十一日 臨時政府憲法頒布紀念)’
대한민국 31년은 임시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환산하면 1949년이 된다. 그래서 권중대 씨가 김구 선생님으로부터 휘호를 받은 시기를 알 수 있다.
그 후 권중대 씨는 1945년 광복의 소용돌이 속에 좌우익의 갈등이 있자, 우익 활동에 앞장서 국민회의 엄정면 부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한 후 좌익세력에게 잡혀 목숨을 잃은 목계 6지사의 한 분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