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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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學校 |
영어공식명칭 | Middle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5월 27일 - 면천 중학교 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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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11월 11일 - 합덕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11월 15일 - 당진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0년 5월 25일 - 송악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6년 2월 28일 - 석문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6월 26일 - 신평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6년 4월 5일 - 서야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7년 10월 23일 - 호서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9년 4월 24일 - 합덕 여자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3월 10일 - 순성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3월 6일 - 송산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4월 8일 - 고대 중학교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3월 6일 - 당진 중학교 대호지 분교장 개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7월 6일 - 원당 중학교 개교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기관.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기관으로 2016년도 현재 8개의 공립 중학교와 5개의 사립 중학교가 있다. 공립 중학교로는 고대 중학교, 당진 중학교, 면천 중학교, 송산 중학교, 순성 중학교, 원당 중학교, 합덕 여자 중학교, 합덕 중학교가 있다. 사립 학교로는 서야 중학교, 석문 중학교, 송악 중학교, 신평 중학교, 호서 중학교가 있다. 분교로 당진 중학교 대호지 분교장이 있다.
2016년 4월 현재 당진시 전체의 중학교 통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 학급은 총 148학급 4,363명, 특수 학급은 10학급으로 52명의 학생이 중학교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개화기의 당진 교육]
개화기의 당진 지역에는 관학(官學)은 없었고 다만 의식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사립 교육이 실시되었다. 교육의 주체로는 근대 지식인, 마을에 형성되 있는 문중, 종교 단체 등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유학의 경전을 교재로 사용했다. 당진 개화기 교육의 대표자는 당진의 서북 지역에서 활동한 화서학파의 유진하(兪鎭河)이다. 또 유진하의 문인으로 도호의숙(桃湖義塾), 유생을 중심으로 심원성, 이철승, 이철영, 정재학, 정재화 등이 있다. 개화기 당진 교육의 또 다른 움직임은 면천면 성하리에서 주로 활동한 운양 김윤식(金允植)[1835~1922]과 안종화(安鍾和)[1860~1924]로 당진과 면천 지역의 근대 교육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당진 지역 종교계의 교육 활동은 '내포의 사도'로 알려진 이존창(李存昌)[1759~1801]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의 박해와 열악한 여건으로 소규모 형태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1907년경 크렘프(Kremff) 신부가 구 합덕 성당에 4년제 매괴 학교(玫瑰學校)를 설립하여 문맹 퇴치와 애국심 함양 운동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했다. 근대 지식인들에 의해 설립된 당진 지역의 근대 교육 시설은 당성 학교(唐城學校), 통명 학교(通明學校), 면양 학원(沔陽學院), 남산가숙(南山家塾), 미산 학교(嵋山學校)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당진 교육]
제1차 조선교육령이 적용된 1911년 직후, 당진 지역에는 면천 공립 보통학교가 1911년 9월 1일자로 개교하였다. 당진 공립 보통학교는 1913년 5월 20일에 개교하였다. 하지만 당진 지역 주민들은 총독부의 교육 정책에 대항하여 보통학교 체제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1910년대에는 입학 지원 및 취학률이 낮았다. 1911년 면천 공립 보통학교는 개교 당시 36명, 1912년에는 11명의 학생만이 입학했다. 1913년 당진 공립학교는 개교 당시 17명, 1914년에는 30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설립된 당진 지역의 공립 보통학교는 모두 해당 면의 면장과 면내 유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세워지게 되었다. 일제의 정책 변화도 있었지만 근대 교육을 받아 문맹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지역 주민들의 열망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적인 사립 학교가 설립되지 못하고 공립 보통학교에 치우친 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구체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점이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외에도 학교 형식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서당인 간이 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간이 학교는 신송, 감봉, 신리, 기지시, 순성면 본리에 설립되었다.
민족 교육으로서의 교육도 나타났다. 사립 매괴 학교, 야학 및 강습소, 글방, 근대 서당 등의 교육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육과정기의 당진 교육]
1차 교육 과정기(1954~1963)는 당진 지역 문맹 퇴치 운동 및 공·사립 학교 설립이 활기를 띠던 시기이다. 지역 주민의 교육열이 높아지고 학생 수는 팽창되어 학교 설립이 급속도록 늘어갔다. 당진 중학교와 당진 정보 고등학교의 전신인 당진 공립 초급 중학교(1946.11.15.)가 설립되었고, 합덕 농업 고등학교(1951.8.13.)가 설립됨으로써 당진 농업 고등학교(1951.9.1.)와 함께 당진 지역의 실업 교육을 이끌어 가게 되었다.
2차 교육 과정기(1963~1973)는 생활 중심, 경험 중심 교육 과정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특히 1960년대 당진에는 지역 주민의 염원에 맞게 교육 기회 확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설립된 중학교로는 신평 중학교(1963.11.1.), 미호 중학교(1966.3.26.), 서야 중학교(1966.3.26), 호서 중학교(1967.10.23) 등 사립 4개 교가 설립되었다.
3차 교육 과정기(1973~1981)는 미국 교육계의 영향을 받아 학문 중심 교육 과정 이론에 바탕을 두고 편성이 되었다. 국민적 자질의 함양 및 인간 교육의 강화, 지식, 기술의 쇄신 등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아실현[개인적 측면]과 국가 발전 및 민주적 가치 함양[사회적 측면]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이 시기에는 순성 중학교(1981.3.1.)가 설립되었다.
4차 교육 과정기(1981~1987)는 민주주의의 토착화, 정의 사회 구현, 복지 사회의 건설을 위한 준비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자 했다. 이에 따른 미래 사회를 민주 사회, 고도 산업 사회, 건전한 사회, 문화 사회, 통일 조국으로 전망하고 이 사회에 기대되는 인간상인 건강한 사람, 심미적인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자주적인 사람을 길러 내는 데 부합되는 방향에서 교육 과정을 구성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국민 정신 교육의 체계화, 전인 교육의 강화, 과학 기술 교육의 심화, 교육 내용의 양과 수준의 적정화를 개정 기본 뱡향으로 삼았다.
1980년대 이후에는 지속적인 이농 현상과 산아 제한의 영향으로 교육 인구가 급격히 감소되었고 그로 인해 1980년 부터 2000년도까지 시설 학교가 1개교도 없었고 분교장으로 격하되거나 통폐합되는 학교가 속촐하였다.
5차 교육 과정기(1987~1992)는 학문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초 교육의 강화, 통합 교육 과정의 구성, 미래 사회 대비 교육의 강조, 교육 과정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주안점을 두고 부분 개정하여 고시되었다. 이 시기에는 당진 중학교 대호지 분교장(1989.3.6.)이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6차 교육 과정기(1992~1997)는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시기에는 열린 교육의 확산,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는 학교 운영 위원회 설치와 운영, 학생 중심의 교육 과정 편성 및 운영, 특기·적성 교육 활동의 강화, 실천 위주의 바른 인성 함양을 통하여 학교 교육의 질 향상과 공교육의 내실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당진에서는 계속적인 이농 현상으로 1992년에 비해 1993년에는 국민학교 18학급 976명(8.1%) 감소 중학교는 7학급 379명(5%)이 감소했다.
7차 교육 과정기(1997~2007)는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 진로에 맞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 취지 아래 수준별 교육 방식의 도입, 학생 스스로 자신의 실력에 따라 교육 과정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2000년 서해안 고속 도로의 서해 대교가 개통되고 한보 철강, 현대 제철 등 산업 시설과 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어 인구가 증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원당 초등학교가 새로 설립되어 2006년 3월에 22학급으로 1회 입학식을 가졌다.
2007년 개정 교육 과정기(2007~2010)는 7차 교육 과정의 기본 철학 및 체제를 유지하면서 단위 학교별 교육 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하였고 국가와 사회적 요구항을 반영하였다. 고등학교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개선하였고, 교과별 교육 내용의 적정화를 추진하며 수업 수를 일부 조정하였다.
2009 개정 교육 과정기(2011~ )는 학년군과 교과군을 도입하여 집중 이수제를 실시하였고, 창의적 재량 활동과 특별 활동 5개 여역을 창의적 체험 활동으로 통합하여,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으로 운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