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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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형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를 뜻한다. 민속의 세부 갈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민간 신앙, 평생 의례, 세시 풍속, 민속놀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도봉구를 이루는 지역은, 선사 시대를 비롯하여 고대 국가 시대에 삼국 세력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인 한강 유역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높이 평가했던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의 성외 지역인 동시에 도읍지의 일부이기도 했으며, 한때는 경기도 양주에 속해 있다가 다시 서울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기도 하였다. 즉 도봉구는 수도 서울과 역사를 함께 하는 한편, 태백산맥의 지세가 일부 내려와 자리를 잡은 도봉산과 관련된 요소를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자연적 환경에서 기인된 다양한 민속이 행해져 왔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민간 신앙]
민간 신앙은 일반 민중의 생활 속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자연적인 신앙을 말한다. 가정 신앙, 마을 신앙, 무속 신앙 등 민간인의 생활을 통해 전승되는 민속 종교가 이에 속한다.
도봉구에는 토박이 주민들을 중심으로 마을 신앙이 전승되고 있다. 도당굿은 전승이 끊겼지만, 원당 마을 행목대신제가 새롭게 만들어져서 전승되며, 이를 주관하는 당주 무당은 단골무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도봉구의 가정 신앙은 가신(家神)의 신체를 모시고, 상달 고사 등으로 가정 신앙의 의례를 행했던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민속놀이]
조선의 민속놀이는 농경의 세시 변화에 맞추어 풍작을 기원하는 세시 풍속으로 행해졌고, 또 농민들의 낙천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세시 놀이와 평상시 놀이, 그리고 어른 놀이와 아이 놀이, 남자 놀이와 여자 놀이, 거기에다 집단 놀이와 개인 놀이 등 놀이의 주체와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 고을, 나라라는 단순한 단위 속에서 평생을 일정한 장소에서 생을 꾸려 왔던 선대 사람들이 향유했던 민속놀이는 현재 서울특별시 내의 도봉구에서 자연적으로 행해지고 있지는 않고 있다. 마을이 하나의 작은 우주로, 그에 속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상호 관계를 맺고 사회화 과정을 거쳤던 생활 양식 자체가 남아 있지 않는 까닭이다.
현재 도봉구에서는 특히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전통 문화 체험의 형태로 민속놀이가 경연되고 있다. 최근의 ‘도봉 구민과 함께 하는 정월 대보름 큰 잔치’에서 행해졌던 민속놀이를 간단히 소개하면, 연 만들기와 연날리기, 제기차기, 투호 놀이, 팽이치기, 널뛰기, 윷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세시 풍속]
세시 풍속은 음력 1월부터 12월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전승 의례를 말하는데 세시(歲時), 세사(歲事), 월령(月令), 시령(時令) 등이라고도 불린다. 세시 풍속은 대개 농경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명절, 절기 등에 행해지던 놀이와 의례로서 생활의 활력소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풍농의 기원 등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의례였다. 그러나 현재는 고유의 농경 문화가 많이 사라졌으며, 도시 문화가 확장되었기 때문에 세시 풍속의 의의 및 중요성도 이에 비례하여 약해진 상태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경우 농업 인구가 감소하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유의 세시 풍속도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아직까지 전승되는 것도 있다. 정월 보름에 오곡밥을 지어 먹는 풍속, 보름날 새벽에 물을 뜨는 옥수뜨기 등은 지금도 행해지며, 중랑천 변에서는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의 글을 써서 재앙을 쫓고자 하는 연날리기가 행해지기도 한다.
초파일 에 행해지는 연등 행사 등은 도봉산 지역의 사찰에서 여전히 행해지며, 특히 요즘에는 사찰에서 음악회를 열어 불교 신도 이외의 사람들에게 문화적 행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단오 무렵에는 중랑천 모래밭에서 씨름판이 열리기도 하며, 삼복에는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끓여 먹는 풍속이 변함없이 행해진다.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에는 성묘나 차례가 행해지며, 송편 빚기 역시 여전히 행해진다. 중양절에는 등고(登高), 즉 높은 곳에 오르는 풍속이 대표적인데, 가을의 대표적 꽃인 국화를 감상하기도 하였으며, 국화주를 마시기도 하였다. 단풍이 한창이면 단풍놀이를 가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 먹으며, 섣달그믐 무렵에는 묵은세배를 하며 송구영신을 위해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행해진다.
[평생 의례]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인 도봉구의 평생 의례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례 방식은 사라지거나 크게 간소화되었지만 단계별로 중요한 의례는 변화한 채 계속 지속되고 있다.
도봉구 원당 마을의 경우에는 마을의 신목(神木)인 은행나무의 남근목을 잘라다 끓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영험담이 전해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행해지고 있다. 즉 기자와 관련된 출생 의례의 일부를 볼 수 있다.
관례(冠禮) 는 성년 의례로 성인이 되었음을 사회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인준 절차이다.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筓禮)라고 하여 이 절차를 통해 아이와 어른이 구별되었다. 예전에는 매우 중시되었던 관례나 계례 등의 성년식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다만 대학에서 축제나 행사의 일환으로 해당 학교 학생들의 관례를 일괄적으로 행하고 있다.
혼례(婚禮) 역시 다른 평생 의례와 마찬가지로 시속(時俗)의 변화로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상례(喪禮) 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의례로서 예전에는 마을의 열반계·향조회 등을 중심으로 품앗이로 치러졌으나, 현재는 병원 장례식장이나 상조 회사의 등장으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하지만 마을 공동체에서 공동 부조를 하고, 조문을 가고, 장지까지 함께 가 주는 등의 일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 제례(祭禮) 역시 유교식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천주교나 개신교 등의 추도식 등으로 변모되기도 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도봉구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시대에 따른 일반적인 변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