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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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杏木大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선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8년 2월 26일 - 서울특별시 지정 보호수 제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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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원당샘 옆 은행나무 앞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46 |
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안의 일요일 오전 7시~9시 |
신당/신체 | 은행나무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보호수 제1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원당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원당마을 행목대신제 는 음력 정월 보름 안의 일요일 오전 7시~9시 사이에 원당마을 원당샘 옆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은행나무를 신체(神體)로 모시기 때문에 행목대신제(杏木大神祭)라고 부른다.
[연원 및 변천]
과거 원당마을에서는 음력 2월 초닷새 안으로 택일하여 마을 뒤에 있었던 도당 고개[도당재, 우이 고개]의 당집 앞에서 원당마을 도당굿을 지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당시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에 의해 당집이 훼손되고, 도당이 있던 산까지 개발되자 도당굿을 하던 도당 터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도당굿의 전승이 끊기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 원당샘 옆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10여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고, 이 제의를 ‘행목대신제’라 부르고 있다.
행목대신제를 지내기 전부터 은행나무를 신체로 한 제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은행나무가 영험하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당마을 경로당 총무인 이미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이 은행나무는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와 그 외에 나라의 큰 변고가 있었을 때 총 3번 나무에 불이 났었다. 나무속에서 연기가 몇 날, 몇 달이고 났었기 때문에 불을 진압하기도 힘들었고, 불이 3번이나 났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에 더욱 영험하다고 원당마을 경로당의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체는 연산군 묘 바로 뒤편 원당마을 안의 원당샘 옆 은행나무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46번지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1968년 2월 26일 서울특별시 보호수 제1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830년이며, 높이 25m, 둘레 10.7m이다.
[절차]
이미자에 의하면 행목대신제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행목대신제는 마을 토박이들의 모임인 향주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향주회는 50명 정도의 회원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한 달에 5천 원씩 1년에 6만 원의 회비로 운영된다. 행목대신제도 이 향주회의 회비로 지내고 있다.
제의는 음력 정월 보름 안의 일요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 정도 간단하게 지낸다. 유교식 제사가 아니라 과거 원당마을에서 살던 보리 보살이라는 무당이 와서 고사 형태로 진행한다. 도당굿에 비해서 많이 축소되었지만 기를 뽑고, 사실을 세우고, 소지를 태우는 등의 절차는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원당마을에는 노총각이 많기 때문에 고사를 지낼 때 노총각들이 장가가기를 염원하는 것이 들어가며, 2012년 제의에도 중요한 바람이었다고 한다.
[부대 행사]
행목대신제가 끝난 후에는 원당 경로당 앞에서 하루 종일 원당마을 대동 윷놀이를 벌인다. 이 대동 윷놀이는 마을 잔치, 축제, 현대의 세시 풍속으로 볼 수 있다. 행목대신제는 향주회가 주축이지만, 대동 윷놀이는 원당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다. 1등부터 4등까지는 상품도 주는데, 이 역시 마을 청년회에서 준비한다.
[현황]
원당마을 행목대신제 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마을 신앙이다. 이미자에 의하면, 2011년에는 방학 4동에 있는 경로당에 초청 공문을 보내 거의 300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즐겼다고 한다. 행목대신제와 대동 윷놀이에는 원당마을 이웃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는데, 제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는 데에서 과거 도당굿의 대동성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2012년에는 경비와 일손 부족으로 원당마을 사람들만 참석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