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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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銅雀區 |
영어공식명칭 | Dongjak-gu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현위 |
[정의]
서울특별시 서남부에 있는 자치구.
[개설]
동작구는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에 가장 일찍 편입된 지역 중 한 곳이다. 동작구가 서울에 편입되었던 1936년에는 경성부 영등포출장소 소속이었으며 이후 관악구 관할 시기를 거쳐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서울의 17번째 구로 개설되어 현재에 이른다.
동작구의 수리적 위치는 북위 37°28′56″34~37°29′49″49, 동경 126°56′55″58~126°58′11″42 사이에 있다. 동작구의 최동단은 동작동 86-6, 최서단은 신대방동 702-2, 최북단은 노량진동 316, 최남단은 사당동 산55-2이다. 동작구청은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다.
동작구에는 노량진1동, 노량진2동, 상도1동, 상도2동, 상도3동, 상도4동, 흑석동, 사당1동, 사당2동, 사당3동, 사당4동, 사당5동, 대방동, 신대방1동, 신대방2동 등 15개의 행정동이 개설되어 있다. 법정동은 본동, 노량진동, 대방동, 신대방동, 상도동, 상도1동,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 등 9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환경]
동작구는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총면적은 16.35㎢로 서울특별시 면적의 2.7%를 차지한다. 동작구는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중 면적이 22번째로 비교적 작은 구에 속한다. 행정동 중에서는 사당2동이 2.75㎢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며 사당4동이 0.38㎢로서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한다.
동작구는 대부분 지역이 평지 또는 낮은 구릉성 지형이며 북쪽으로는 한강과 여의도를 접한다. 국립서울현충원 뒷산이 되는 덕박굴산과 상도동 뒷산이 되는 장승배기고개를 연결하는 능선이 동작구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남태령에서 발원하는 동작천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체로 완만한 언덕이 산재해 있으나 동부의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일대와 남쪽의 국사봉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탄한 지형을 보인다. 한강 이남 지역의 주요 산인 관악산과 청계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남쪽의 국사봉과 까치산 등의 산은 관악구와의 자연경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밖에 용마산, 고구동산, 용봉정, 서달산 등 해달 100m 남짓한 소규모 구릉지가 분포하고 있다.
명수대 부근에는 한강 곡류의 공격 사면이어서 침식을 많이 받은 침식애가 발달하였다. 우리나라 4대 하천의 하나인 한강 지류의 기반암에 영향을 받는데, 동작구는 이 중에서 대보화강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을 기반으로 한다. 강북지역에 비해서는 다소 복잡한 지질구조를 가지며 한강 주변의 충적층에는 화강암, 편암, 편마암 등에서 공급된 원력 또는 아원력과 사력이 퇴적되어 있다.
기후의 경우 남부지방의 난대성 기후와 북부지방의 한랭한 기후의 중간인 점이적 특색을 나타낸다. 동작구의 연평균 기온은 12.5℃이며 1월 평균기온은 -0.2℃, 8월 평균기온은 24.8℃, 일 최고기온은 39.6℃[2018년 8월 1일]로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운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지만 다른 서울 지역에 비해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이 비교적 시원한 기온을 보인다. 이것은 동작구의 북부를 감싸고 흐르는 한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전반적인 기온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강수량은 약 1,351㎜이며 우리나라 대부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름철에 집중한다. 7월은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많은 비를 뿌리며 특히, 한강에 인접한 노량진동, 흑석동 지역은 과거에 한강이 범람하여 심한 수해를 입기도 했던 지역이다.
[인구]
동작구의 인구는 2020년 7월을 기준으로 394,905명이며 이 중에서 남자 191,063명, 여자 203,842명으로 여성의 비율이 조금 높은 편이다. 세대수는 183,870세대, 세대당 인구는 2.15명으로 전형적인 서울의 주거지역 인구구성과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연령별 인구 비율은 28세가 2.28%로 비율이 가장 높은데, 입시학원이 집중된 지역 특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밀도는 1㎢ 당 25,038명으로 서울 내에서도 양천구, 동대문구에 이어 3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구이다.
인구 증감의 경우 1992년 427,486명, 2009년 407,973명, 2020년 7월 현재 394,905명으로 소폭 감소하고 있으며 인구 증가의 정체기로 볼 수 있다. 다만 인구가 소폭 감소하거나 정체하는 부분에 반해 최근 10년간[2009~2019년] 동작구 내 세대수는 약 8%가량 증가하였다.
그밖에 2019년 인구 현황으로 볼 때 1일 출생은 6.6명, 사망은 4.7명, 혼인은 5.7건, 이혼은 11.5건의 통계수치를 보인다. 하루 전입인구는 178.3명, 전출인구는 181.1명으로 소폭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역사]
동작구는 1980년 4월 1일에 설치되었다. 동작구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서울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동재기나루에서 명칭을 따서 제정되었다.
1980년 관악구에서 분구될 때 구의 명칭으로 ‘노량진구’, ‘동작구’ 등이 대두되었으나 이곳에 동작진이 조선 시대 500년간 설치되어 있었고, 또한 동작동 국립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가 있는 관계로 ‘동작구’라 제정한 것이다. 동작구 지역은 옛 시흥, 과천 지역의 역사와 함께한다.
5세기경 삼국이 서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할 때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지역을 점령하여 잉벌노현·율목군·장항구현을 설치하였으며 신라의 삼국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곡양현·율진군·장구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였던 940년(태조 23) 곡양현은 금주로, 장구군은 안산현으로 각각 고쳐졌다.
이때 명칭이 지정되었던 금주의 경우 『고려사(高麗史)』·『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의하면 성종 때 시흥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의 ‘시흥’이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현 인천광역시 부평]에 소속된 적이 있었으며, 1172년(명종 2) 처음으로 감무(監務)를 두었다.
또한, 동작구의 일부 지역에 속했던 과주는 성종 때 부안(富安) 또는 부림(富林)이라고도 하였으며 1018년 광주목에 속하였으나 뒤에 감무를 두었다. 1284년 이곳의 용산처를 부원현으로 승격시켰다. 안산현은 1018년 수주가 지금의 수원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으며 1038년 고려 문종이 탄생한 마을이라 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어 안산군이 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 1413년(태종 13) 지방 제도를 개혁할 때 금주는 금천현으로, 과주는 과천현으로 개칭되어 안산군과 함께 모두 경기도에 속하였다. 1414년 금천현과 과천현을 합하여 금과현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으며, 이후 다시 금천현과 양천현을 합하여 금양현으로 하였다가 1416년(태종 16) 다시 나누어 금천현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다. 1456년(세조 2) 금천현이 과천현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분리된 후 1795년(정조 19)에 시흥현이 되었다. 1895년 지방 관제 개정으로 인천부 시흥군·과천군·안산군으로 개편되었고, 이듬해에 시흥군·과천군·안산군이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작구가 속했던 금천군·과천군·안산군이 통합되어 시흥군으로 개편되면서 시흥군 북면[번대방리·노량진리·본동리·흑석리·동작리], 신동면[사당리], 동면[상도리] 지역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성부 구역이 확장될 때, 경기도의 노량진리·본동리·흑석리·동작리·번대방리 일부와 상도리가 경성부에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동시에 상도리는 상도정(上道町), 본동리는 본동정(本洞町), 노량진리는 노량진정(鷺梁津町), 번대방리는 번대방정(番大方町), 흑석리는 흑석정(黑石町), 동작리는 동작정(銅雀町) 등의 일본식 명칭이 붙여졌다.
광복 후 1946년 9월 28일 군정법령 제106호에 따라 영등포출장소가 서울시 영등포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이때 정(町)·정목(丁目) 등의 일본식 동명도 개정하여 한성부 때부터 써오던 유서 깊은 동명 또는 위인 선철의 아호를 따서 동(洞)·노(路)·가(街) 등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이때 동작동·흑석동·본동·노량진동·상도동·대방동 등의 이름을 찾았다.
1949년 8월 13일에는 대통령령 제159호에 따라 서울의 행정구역이 또 확장되었는데, 이때 경기도 시흥군 동면의 구로리·도림리·번대방리[상도천 좌안 지역]가 편입되었으며 뒤이어 1950년 3월 15일 구조례 제10호로 구로동·신도림동·신대방동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영등포구 관할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이 있었는데, 이때 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많은 지역이 영등포구로 편입되었으며 사당동이 시흥군 신동면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영등포구 신동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서울의 인구가 더욱 늘어나면서 1973년 7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6548호에 의해 영등포구에서 관악구를 분구하게 되었으며 이때 관악구는 영등포구 중에서 노량진동·상도동·상도1동·봉천동·본동·흑석동·동작동·사당동·대방동·신대방동·방배동·신림동 등 관악산 기슭 아래의 고지대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현재 동작구 지역은 관악구에 속하게 되었으나 또다시 계속된 서울의 인구 증가로 1980년 4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해 관악구에서 동작구가 분리되었다. 이로써 신설된 동작구는 9개의 법정동과 15개의 행정동을 관할하며 현재에 이른다.
[문화유산]
동작구는 한강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을 토대로 많은 역사문화 유산을 보유한 곳이다. 대표 문화유산으로는 용양봉저정, 사육신묘, 양녕대군 이제 묘역, 달마사, 사자암, 노량진역 철도시발지 기념비, 동재기나루터 등이 있다.
2022년 기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문화재 수는 부동산문화재 10개소, 동산문화재 26종이 있으며, 전통사찰은 사자암, 달마사, 호국지장사 3개소가 있다.
노들나루터는 한강 남안, 지금의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사이 강변에 있던 나루터로,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에서 유래한 노들나루를 한자로 표기하여 ‘노량진’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수양버들이 울창하여 ‘노들나루’라 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노들나루는 한양에서 시흥, 수원 방면을 거쳐 충청, 전라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있어 조선 시대에는 군대가 주둔하는 진(鎭)이 설치되었다.
노들나루 남쪽 언덕에는 노량원이 있어 도성을 오가는 많은 사람이 쉬었다 갔으며, 나루의 북쪽 강변에는 새남터라 불리는 넓은 백사장이 있어 일찍이 사형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는 행인의 왕래가 잦았던 노들나루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처형 과정을 보임으로써 경계심을 갖도록 한 조치였다.
조선 후기 정조 때에는 수원 사도세자의 묘소로 향하는 길목인 노들나루에 국왕의 행차를 위한 배다리를 놓았으며, 이를 위하여 주교사라는 전담 관청을 설치하였다. 1791년 정조는 한강을 건넌 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노량행궁을 설치하고 행궁 안에 있던 누정을 용양봉저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이라고 지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가 준공되면서 노들나루는 나루터의 기능을 상실해갔으며, 1989년 서울특별시에서 세운 ‘노량진 나루터’ 표석이 옛 정취를 지켜주고 있다.
동재기나루터는 흑석동에서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색을 띤 돌들이 많이 분포된 데서 붙어진 이름으로, 동재기나루는 조선 시대 서울에서 과천, 수원, 평택을 거쳐 호남으로 내려가든가, 또는 서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넜던 교통의 요지였다.
사육신묘[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는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된 70여 명 중 젊은 육신의 묘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서울특별시에서는 1955년 그 자리에 육각의 사육신묘비를 세우고 1978년 정화해 사육신역사공원을 조성하였으며 이후 사육신묘는 동작구의 주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양녕대군 이제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에는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1394~1462]의 묘와 사당인 지덕사가 있다. 조선 태종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자유분방한 성품으로 궁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러 태종의 눈 밖에 난 행동을 거듭하여 결국 폐위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왕세자에는 양녕대군의 동생이며, 뒷날 세종이 된 충녕대군이 책봉되었다.
그 후 양녕대군은 전국을 유랑하면서 풍류객들과 사귀며 일생을 마쳤는데, 동생인 세종이 즉위한 뒤에도 서로 극히 우애가 깊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시와 서예에 능하였다. 인근에 있는 약수암 일대를 옛날에는 강적골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양녕대군의 시호가 ‘강적공’인 데서 유래되었다.
사자암은 전통사찰 제77호로 조선 1396년(태조 5)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으로 서울의 풍수를 바라보니 백호가 달아나려는 형상이어서 이를 막고자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의 형상을 띤 국사봉에 사자암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자암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다수의 불화와 탱화가 모셔져 있다.
달마사는 서달산 북쪽에 있는 조계종 비구니 사찰로 전통사찰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1931년 만공의 법통을 이은 유심대사가 달마사를 창건하여 호국 기원과 중생제도의 도량으로 삼았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탄압에 대항해 한국불교를 지도한 송만공대선사를 모시고 여러 차례 법회를 열었다. 광복 후 1966년부터 삼성각, 대웅전, 다보탑이 차례로 조성되었고 대웅전에는 향나무로 만든 석가모니불이 안치되었으며 삼성각에는 유심대사가 금강산에서 가져온 독성탱화가 안치되었다.
동작구에는 근대의 산업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노량진역 철도시발지 기념비가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점이었던 노량진역에 있는 비석이다. 경인선은 서울 노량진에서 인천 제물포 간 총길이 33.2㎞의 철도로, 1897년 3월 22일 착공하여 1899년 9월 18일 개통되었는데 증기기관차와 함께 당시로써는 매우 충격적인 교통의 혁명이었다. 이곳에는 시인 서정주의 시와 함께 1975년 기념비 건립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휘호한 ‘철도시발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동작구 숭실대학교 내에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숭실대학교 출신의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였던 교수 김양선과 그 가족의 노력으로 설립되었다. 1948년 4월 서울 남산에 설립되어 운영되던 것이 전쟁으로 휴관되었으며, 이후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다가 1967년 ‘숭실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부속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외에 민속자료로 흑석동 산신제 등이 있다. 특히 흑석동 산신제의 농악과 무악은 억압된 당시의 동작구 주민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나 3·1운동과 6·10만세 운동 뒤 군중집회를 두려워한 나머지 단순 전승으로 면면히 이어온 이 동제마저 금지해 1936년경에는 그 맥이 거의 끊기게 되었다.
[교육 및 문화]
동작구는 예로부터 충신들이 많이 배출된 충효의 고장이며, 다양한 문화축제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하는 수준 높은 문화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동작구의 교육기관은 2020년 기준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7개교, 특수학교 2개교가 있고,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총신대학교 등 3개의 대학교 및 대학원이 있다. 특수학교는 광성해맑음학교와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서울삼성학교가 있다. 직업학교는 한국직업전문학교, 원화직업전문학교, 한독간호학원, 소망직업학교가 있다.
동작구의 문화시설은 사당문화회관, 도서관, 전시시설, 공연장, 영화관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당문화회관과 동작문화복지센터는 동작구민을 위한 문화 활동 공간으로 동작문화원이 문화학교를 개설하여 다양한 문화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문화예술 전시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 사육신 충절을 배울 수 있는 사육신역사관이 있다.
지역 언론기관으로는 『동작뉴스』, 『동작신문』이 있으며, 동작구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단체는 구립합창단과 동작구립소년소녀합창단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며 활동하고 있다. 공공 체육시설은 보라매공원 내에 있는 동작구민체육센터, 흑석체육센터, 사당종합체육관, 동작삼일수영장으로 헬스, 요가, 수영, 골프 등 다양한 체육프로그램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산업]
동작구 서남쪽 구로공단과 인접한 신대방동 일부에는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한국모방, 태평양화학, 신화방직, 유한양행 등의 큰 공장과 함께 전기·전자기구 공장 등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산업구조의 개편과 도시재생 등의 이유로 신대방동의 공장들은 대부분 아파트와 주택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973년 「농수산물도매시장법」에 따라 노량진 수산시장이 개장하며 수도권 지역의 수산물 판매, 저장, 가공시설을 모두 갖추게 되었으며, 서울에서 거래되는 전체 수산물 중 49.5%의 물량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인 관광객 등이 연간 1만여 명이나 찾아오는 국제적인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노량진역은 시내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는 대표적인 곳으로 가장 붐비는 전철역의 하나인데,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입시학원과 고시학원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전국적인 학원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
동작구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수호지사를 모신 국립서울현충원과 조선 시대 충신의 상징인 사육신묘[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가 있고, 옛날 선조들의 수호신인 장승이 서있던 마을인 장승배기, 양녕대군이 올라가서 국사를 걱정했다는 국사봉,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역을 참배할 때 강을 건너 잠시 쉬어가던 용양봉저정[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지인 노량진역 등 수많은 명소가 위치해 있다.
또한 사육신 추모제향, 장승배기 장승제, 동작가족한마음축제 등 구민과 함께 어울리는 다양한 문화축제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함께 하는 수준 높은 문화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아울러 동작구에는 성대전통시장, 상도전통시장, 남성사계시장 등 14개의 시장이 있다.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노량진 수산시장, 남쪽으로 노량진중앙시장, 동쪽으로 사육신묘, 서쪽으로 학원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학원가를 중심으로 음식점과 기타 서비스 관련 산업이 활발하다.
한편 사육신 추모제향이 매년 개최되는데, 사육신의 충절과 드높은 선비정신을 기리는 전야제 행사로 사육신의 혼을 부르고 영혼을 달래는 살풀이춤, 사물놀이굿, 판소리, 단종 복위 모의과정을 재연한 무용극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장승배기 장승제도 매년 개최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된 장승을 동민이 다시 세우고 장승제를 지내는 민속을 되살리는 전통놀이이다. 아울러 구민노래자랑[노들가요제], 구민체육대회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