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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03
한자 寶光里
영어음역 Bogw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보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3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72㎢
가구수 137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245명(남자 124명, 여자 12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보(上寶)·하보(下寶)를 통합하면서 ‘보배 보(寶)’자를 따고 마을이 빛나게 발전하라는 염원을 담아서 ‘빛날 광(光)’자를 써서 보광(寶光)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마을 뒷산 탑골에 조선 정종 때 세워진 보광사가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보·하보가 통합되어 김천군 곡송면 보광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보광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보광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감문면 보광리가 되었다.

[현황]

보광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7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37세대에 245명(남자 124명, 여자 12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쪽으로 대양산을 사이에 두고 개령면 남전리, 북쪽으로 보광산을 사이에 두고 삼성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 상보·하보·보광 등이 있으며, 청주 한씨·해주 오씨·전주 이씨 집성촌이다.

김천 시내에서 구미시 무을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913호선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난다. 감문면의 행정 중심지로 감문면사무소·파출소·복지회관 등이 들어서 있고, 1990년 조성된 감문농공단지에는 11개 업체가 입주하여 4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평야가 발달해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고 최근에는 참외 시설 재배와 포도 재배도 많이 이루어진다. 유적으로는 보광리 고분군, 보광리 고인돌군이 있다.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피난 온 청주 한씨 한건(韓建)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고, 1608년 한건의 딸과 해주 오씨 오명건(吳命乾)이 혼인하여 마을에 정착해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해주 오씨와 청주 한씨는 사돈지간으로 집성촌을 이루었다. 지금도 주민들은 마을 북쪽에 청주 한씨가 최초로 정착해 살았다는 집터를 대밭집이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긴다.

예부터 마을 뒷산에 감문국의 한 장군의 넋이 깃들었다고 믿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자 주민들이 호랑이를 달래기 위해 국신바위 앞에 제단을 차리고 매년 정월 초이튿날 소를 잡아 도살제(屠殺祭)를 지내 왔으며,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약식으로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나오다 보면 도로 중간에 수백 년은 족히 됨직한 아카시아 나무가 서 있다. 도로를 확장할 때부터 통행에 지장을 준다 하여 여러 차례 베어 버리려 했으나 나무를 신성시하는 동민들의 반대로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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