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279
한자 觀德里
영어음역 Gwande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54㎢
가구수 6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137명(남자 71명, 여자 66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예전 마을에 활을 쏘는 사장(射場)인 관덕정(觀德亭)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관덕정에서 활을 쏘면 이웃한 여배리 속수(束水)까지 날아가서 그곳까지 가서 화살을 주워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활람·새터·원당·구수골[九水谷]·고석·양산이 통합되어 김천군 지례면 관덕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지례면 관덕리로 개칭되었고, 1971년 관덕1리·관덕2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지례군 관덕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궁을산(弓乙山) 아래 활람이 있고, 활람에서 증산면 황항리로 이어지는 천상봉 노루목재 아래 구수골이 있다.

[현황]

관덕리지례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7.5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65세대에 137명(남자 71명, 여자 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관덕1리·관덕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봉산 이씨 집성촌이다. 자연 마을로는 활람·구수골이 있다.

활람은 조선 중종 때 영변대도호부사(寧邊大都護府使)를 지낸 김희수(金羲壽)가 사림파와 훈구파의 충돌로 빚어진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겪은 후 낙향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김해 김씨 경안공파(敬安公派)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김희수가 마을에 정착한 뒤 뒷산의 형세가 굽은 활을 닮았으므로 궁을산이라 했는데, 뒤에 마을이 지례현 소재지 남쪽에 있다 하여 궁남(弓南) 또는 활람이라 하였다.

궁을산 정상에는 18대 임금 현종이 1660년 조성한 효종의 3녀 숙명공주(淑明公主)와 6녀 숙경공주(淑敬公主)의 태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서삼릉으로 이안된 후 1940년대 후반까지 태실비가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태를 안치했던 두 개의 구덩이만 남아 있다.

구수골은 김천에서 유일한 봉산 이씨 집성촌으로 조선 고종 때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이춘욱(李春旭)이 이거한 이래 대대로 세거해 오고 있다. 마을 일대의 아홉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해지는 곳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구슬바위 밑에 들어 있는 구슬을 꺼내려다 벼락이 쳐서 그냥 덮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