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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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醬- |
영어의미역 | Rice in Broth |
이칭/별칭 | 온반,탕반,국밥,따로국밥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음식물/음식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집필자 | 김갑영 |
[정의]
양지머리 국물에 밥을 넣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향토음식.
[개설]
한국인은 주식으로 밥에 국물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을 장국밥이라 하고,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경우는 따로국밥이라고 한다. 장국밥 주로 5일장에 오는 외지의 상인이나 나그네에게 제공되었던 음식이다.
장국밥의 명칭은 국물을 끓일 때부터 간장으로 간을 한 국에 밥을 마는 것에서 기인하며, 다른 이름으로 온반(溫飯), 탕반(湯飯)이라고도 한다. 장국에 국수를 말아서 내는 국수장국이 있는데, 국밥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먹는 잔치음식에 많이 이용한다.
[연원 및 변천]
1920년대에는 제민천의 중앙지점인 대통다리(대통교)의 동쪽 천변에 국밥집이 많이 있었고 그곳은 ‘국밥거리’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국밥 냄새가 구수하여 침을 삼키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의 우체국 다리로부터 대통다리까지의 제민천 동쪽에 위치해 있던 국밥거리의 아래쪽에는 나무장이 섰었다.
이른 새벽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나무장사꾼들이 솔가지며 잎나무, 장작들을 싣고 와 즐비하게 서 있었는데, 나무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군청의 산림감시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장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국밥 한 그릇 값은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20전(錢) 정도였는데 촌의 노인네나 나무장수들은 별러서 1년에 한 두 차례 맛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음식점이 대형화, 고급화되면서 이들 국밥거리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8·15해방 당시 옛 국밥 맛을 간직하고 있던 서산옥, 우성옥 등에서 그 명맥을 이어 오다가, 중동에 있는 이학식당의 고봉덕과 그 며느리 김혜식이 ‘공주국밥’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만드는 법]
양지머리에 물을 붓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오랜 시간 푹 고아서 식힌 뒤 위에 뜬 기름을 제거한다. 국물을 밭쳐 맑게 한 후에 밥을 말고 위에 고명으로 쇠고기 볶음, 살고기 파산적, 양지머리 편육, 알지단 등을 얹는다. 마지막에 후춧가루를 뿌려 한 그릇의 음식으로 낸다.
장국밥을 만들어 파는 집에서는 많은 양을 만들기 위해 뼈를 이용하여 국물을 내는 데, 소뼈와 소무릎뼈를 12시간 이상 푹 고아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쇠고기를 넣고 1~2시간 동안 더 끓인다. 소금·후추·파·고춧가루·마늘 등의 양념을 넣고 다시 30분 정도 끓여서 국에 밥을 말아 장국밥으로 내거나 국과 밥을 따로 담아 따로국밥으로 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우리나라 식사의 기본은 밥과 국이며, 밥과 국을 섞으면 국밥이 된다.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식사법으로 국밥을 즐겨 먹는데, 춥거나 덥거나 한 그릇의 국밥은 서민들의 허기를 메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바쁜 나그네나 상인들이 서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오늘날의 패스트푸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