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46 |
---|---|
한자 | 鎭城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종수 |
관할 지역 | 진성창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 |
---|
[정의]
고려 시대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세웠던 조창(漕倉).
[개설]
진성창(鎭成倉)은 고려 시대 각 지방의 세곡(稅穀)을 개경으로 운반하기 위해 마련한 12개 조창 중의 하나였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진성창은 임피 지역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위치는 성산면 창오리와 도암리 경계에 있는 망경산(望京山) 부근이다. 망경산 부근에 아직도 진성창 터(鎭成倉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진성창 터 주위에는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성의 흔적이 있는데, 조창(漕倉)이 위치한 마을 터가 기러기 형태를 띤다하여 조창의 창(倉)과 기러기를 뜻하는 안(雁)을 합성해 창안산성(倉雁山城)이라고 부른다. 창안 산성은 마을 입구에 절개된 성벽 면을 보면 토축(土築)하여 만들었으므로, 창안 토성이라고도 부른다. 창안 토성은 약 4㎞ 가량의 길이로 진성창 터를 에워싸고 있다.
진성창은 인근의 진포(鎭浦)에서 조운(漕運)을 통해 세곡을 거두어 들여 충청도, 경기도의 연해로(沿海路)를 통해 예성강(禮成江) 입구 경창(京倉)에 납부하였다. 이 때문에 진성창 일대는 고려 말기 왜구들의 약탈 대상이 되었다. 진성창 부근에서 일어난 가장 유명한 전투로는 1380년(우왕 6)에 있었던 진포 대첩(鎭浦大捷)을 들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의 지방 조세는 건국 초기부터 주로 선박을 통해 운송되었다. 처음에는 지방 호족의 협조 아래 조세를 징수하고 운송의 편의를 도모하였기 때문에 호족들의 포구장악과 자의적인 수경가(輸京價) 징수가 행해졌다. 고려 정부는 이러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에 60여개의 포창(浦倉)을 설치하고 포구 이름을 바꾸었으며 개경까지의 운송료도 일괄적으로 규정하였다. 운송료는 최대 5석당 1석에서 최저 21석당 1석까지 10단계로 나누어 부과하였다. 운송료의 책정기준은 거리의 원근, 항해의 난도, 포창 설치 시기 등을 고려하여 마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60포창 제도는 사선(私船) 동원의 한계가 있었지만, 호족들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부분적으로나마 제한한 제도로서 의미가 있었다.
60포창 제도는 지방에 대한 중앙 통제의 강화 추이 속에서 12개 조창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12조창 제도의 실시로 조세는 모두 관선(官船)을 통해 운송되었다. 12조창의 하나인 진성창은 이렇게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 강화가 구체화되는 가운데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진성창은 『증보문헌비고』에 임피 지역의 해창(海倉)으로 기록되었다. 또 임피현에서 ‘서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고려 조창인 진성창이 있다’, ‘흙으로 둘레 10여 리의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이를 통해 진성창의 위치와 규모, 진성창을 둘러싼 성곽이 토성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창안토성은 판축 양식으로 쌓아올린 흙담으로 조성된 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사』 식화지에서는 진성창이 옛 진포라는 연원을 밝히고 있다.
[내용]
진성창의 수세 구역은 전주목 직할 구역과 현령관 임피현 관내, 진례현 관내, 김제현 관내, 금구현 관내 등이다. 이 지역 중에 진례현을 제외한 대부분은 완주군 동쪽 고지에서 발원하여 전주, 익산, 김제, 군산의 충적 평야를 거쳐 서해로 빠져나가는 만경강 수계권에 있다. 진성창의 수세 지역은 인근 안흥창에 비해 광범위하였다. 이것은 조창의 입지 조건으로 알맞은 금강 하구, 곡창 지대인 호남 평야와 가깝고 육로·하천·수운 등의 교통의 요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변천]
진성창을 포함한 12조창은 성종 대 무렵 설치되기 시작하여 문종 대 무렵에 안란창(安瀾倉)이 추가 설치되면서 13조창으로 확대되었다. 13조창으로는 진성창[군산]을 포함하여 흥원창[원주], 덕흥창[충주], 하양창[평택], 영풍창[서산], 안흥창[부안], 부용창[영광], 해릉창[나주], 장흥창[영암], 해룡창[순천], 통양창[사천], 석두창[마산], 안란창[장연]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진성창은 고려 시대 조운 제도가 중앙 집권적 추이 속에서 변화하는 가운데 설치된 12조창의 하나로 군산 지역에 설치되었다. 진성창 설치로 인해 군산에는 고려 전기 이래 관선(官船)이 활발하게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