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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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峨嵯山四堡壘 |
영어공식명칭 | Achasan 4boru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집필자 | 김성신 |
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고구려가 아차산 4보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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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10월 27일 - 아차산 4보루를 포함해 아차산 일대 보루군 사적 제455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9월 22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아차산 4보루 1차 발굴 조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11월 5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4보루 1차 발굴 조사 종료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7월 23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아차산 4보루 2차 발굴 조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9월 10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4보루 2차 발굴 조사 종료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11월 20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아차산 4보루 포함 구리시 전역 지표 조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0월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4보루 포함 구리시 전역 지표 조사 종료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0월 31일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아차산 제4 보루 발굴 조사 종합 보고서 발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2월 - 서울 대학교 박물관·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구리시·구리 문화원에서 아차산 4보루가 포함된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 지표 조사 보고서 발간 |
성격 | 성곽[보루] |
양식 | 고구려 산성 |
소유자 | 국가 |
관리자 | 경기도 구리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개설]
아차산 4보루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보루(堡壘)[성(城)]이다. 타원형 봉우리의 비탈면을 따라 약 20단 이상의 석축을 쌓아 구축한 군사 요새로, 외곽의 석축 성벽과 내부의 건물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7~1998년에 실시한 전면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성 내부에서 7기의 건물이 확인되었고, 가장 높은 곳의 건물지 주변에서 명문 토기를 포함한 각종 토기와 투구 및 갑옷,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2004년에 아차산 4보루를 포함한 일대의 보루군이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아차산 4보루는 아차산 정상에 있는데,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의 경계이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아차산 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에 있어서 남쪽으로는 아차산의 다른 보루들과 연결되고, 서북방으로는 용마산과 연결된다.
[변천]
아차산 4보루가 속한 한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곳으로, 5세기 후반부터 551년까지 고구려가 지배하였다.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들은 이 시기에 축성되었다. 1997년과 1998년에 서울 대학교 박물관이 구리시와 구리 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전면적인 발굴 조사를 벌였으며, 2000년에 『아차산 제4 보루 발굴 조사 종합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형태]
아차산 4보루는 해발 285.8m의 아차산 정상 넓은 평탄면에 축성되었다. 성벽은 남북을 장축으로 하는 타원형으로 둘레 210m, 높이 4m가량이며, 동쪽과 서쪽에 각 1개의 치(雉)[돌출시켜서 쌓은 성벽]가 조사되었다. 성벽은 정상부 평탄면에서 직선거리로 5~7m 바깥에 쌓았는데, 한강이 보이는 동벽은 화강암 석재를 잘 다듬어 정교하게 쌓아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반면에 용마산 쪽인 서쪽은 거의 훼손되었고, 북벽은 다소 조잡한 석재를 사용하였다. 한편 경사가 큰 지점은 성벽을 높게 쌓고 완만한 지점은 낮게 쌓아서 연결하는 등 지형에 맞추어 축성하였다.
성벽 안쪽의 평탄면에서는 7기의 건물이 확인되었다. 각 건물지 내부에 1기 이상의 온돌이 설치되어 총 13기의 온돌이 확인되었다. 건물의 형태는 가장 남쪽의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남북 방향으로 축조되어 성벽의 장축 방향과 일치한다. 규모가 가장 큰 건물지의 경우 3칸의 온돌방과 2기의 집수 시설 및 배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건물지 외곽에는 대장간 시설도 1기 설치되었다.
[현황]
아차산 4보루는 지표 조사와 전면적인 발굴 조사 이후 정비되었으며, 국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어 구리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때는 많은 유물도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저장·운반·조리·배식 등의 용도 구분할 수 있는데, 모두 26종 538개체가 출토되었으며, 주로 온돌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주변에서 출토되어 실생활과의 밀접성을 짐작케 하였다. 토기류는 5세기 중반의 특징을 보이는 것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 6세기 이후로 판단된다. 철기류는 모두 319점이 출토되었는데, 무기류·마구류·농공구류·용기류 등이다.
[의의와 평가]
아차산 4보루는 백제나 신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했던 고구려 관련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대의 다른 고구려 보루들과 함께 국경 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방위 체계, 군 편제 등을 밝혀 주는 역사 자료이며, 고구려의 남하 과정이나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시루봉 보루와 함께 원형이 복원되어 현대인으로 하여금 고구려 시대의 보루를 간접적이나마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