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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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衿陽縣 |
영어음역 | Geumnya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윤대준 |
[정의]
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현조에 “북쪽으로 양천현(陽川縣)까지의 거리가 27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천현조에는 “금천현(衿川縣)까지 동남쪽으로 20리이다”라고 실려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조와 양천현조의 기록에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 금천의 옛 지명이었던 고구려의 잉벌노현(仍伐奴縣)을 한자식 이름인 곡양(穀壤)으로 바꾸고 율진군(栗津郡)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양천의 옛 지명이었던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을 공암(孔岩)으로 바꾸고 마찬가지로 율진군을 영현으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같은 기록에서 고려조에 금주(衿州)와 공암현은 1018년(현종 9)에 모두 수주(樹州)에 예속되었음을 살필 수 있다.
[내용]
금양현(衿陽縣)은 조선시대 경기도 금천현과 양천현이 합하여 이루어진 지명이다. 금천현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와 구로구, 시흥시, 광명시 일대에 걸쳐 있던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된 현(縣)이었다. 양천현은 조선시대의 명칭이 서울특별시 양천구(陽川區)에 오늘날에도 온전히 남아 있으며, 금천현보다 한 등급 높은 종5품의 현령(縣令)이 파견되는 현이었다. 금천현과 양천현은 각기 서북과 동남 방향으로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