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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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成遠殉孝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25년 - 김성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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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김성원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79년 4월 - 김성원 순효비 건립 |
현 소재지 | 김성원 순효비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충효동] 862-1 |
원소재지 | 김성원 순효비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 |
성격 |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학자 김성원의 효를 기려 1979년에 세운 비 |
양식 | 비갓과 좌대를 갖춘 일반형 석비 |
관련 인물 | 김성원 |
재질 | 석재[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87㎝[총 높이]|142㎝[비신 높이]|50㎝[너비]|23㎝[두께]|45㎝[비갓[가첨석] 높이]|90×60㎝[좌대]|30㎝[좌대 높이] |
소유자 | 광산 김씨 종중 |
관리자 | 광산 김씨 종중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에 있었던 김성원의 순효를 기리는 비.
[개설]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 광주광역시 충효 마을 출신의 문관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1525~1597]이 고령의 노모를 등에 업고 화순 동복 모후산(母后山)으로 피난을 가다가 갑자기 왜적들이 노모를 해치려 하자 노모를 보호하려다 함께 순절하였다. 이를 기려 1979년 김성원의 순효비를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에 세웠다. 모후산은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나복산(蘿蔔山)이라고도 하는데, 정유재란 때 김성원의 순효를 기려 모호산(母護山)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며 동네 이름도 모호촌으로 고쳤다고 한다.
[건립 경위]
김성원 순효비는 1978년 10월 김성원의 후손 김정식(金禎植)과 김희조(金熙祚)가 전원식(田元植)에게 비문을 받아 1979년 음 10월에 11세손 김희진(金熙鎭)이 글씨를 써서 호남 유림에 의해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에 세워졌다. 1992년 축조된 주암댐의 수몰로 인해 주암호 수몰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마을 인근 광산 김씨 선산 곁 영롱대 부근[화순군 사평면 복교리 산 82-13 일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1990년대에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충효동] 충장사 인근에 있는 배재[이치]의 김감(金瑊) 신도비 곁으로 옮겼다.
[위치]
김성원 순효비가 있던 원래 위치인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복교리는 주암호 수몰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현재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충효동]에 옮겨졌다. 화순군청 소재지에서 23㎞ 거리로 국도 22호선을 타고 광주 방향으로 너릿재를 지나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산수동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무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충장사 입구에서 충효동 쪽으로 송강로길을 타고 150m 지점의 길 우측에 있다.
[형태]
장방형의 좌대와 비몸돌, 한옥 지붕 형태의 가첨석을 얹은 일반형 석비로 충효동 쪽을 정면으로 하고 있다.
김성원 순효비는 장방형의 좌대 윗부분에 1단의 받침을 만들고 가운데 홈을 파서 비몸돌을 세웠다. 비몸돌에는 앞면에 비제가 음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비문 11행이 세로쓰기로 음각되어 있다.
옆면에는 연기와 지은이, 글씨 쓴 사람, 세운 사람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금석문]
앞면에 내려쓰기 1행으로 ‘서하당 김선생 모호산 순효비(棲霞堂金先生母護山殉孝碑)’, 뒷면 비음기는 11행[1행 40자]으로 비문의 내용은 김성원의 인적 사항과 교유 관계, 임진왜란 때의 활동, 그리고 정유년의 동복 가관(假官), 모후산에서의 90노모와 함께 피신하다가 노모와 함께 1597년 10월 7일에 순효한 사실, 이후 모후산 산 이름을 모호산으로 하고 촌명을 모호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 충효리와 충장공의 사호 등을 기록하고, 후손 정식(禎植)과 희조(熙祚)의 청에 따라 전원식이 비문을 짓게 되었음을 적고 있다. 옆면[향우]에는 ‘宣廟丁酉后三百八十二年戊午陽復月 潭陽田元植謹撰/十一世孫 熙鎭謹書/己未夏四月湖南儒林建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담양인 전원식이 정유재란 뒤 382년 되던 1978년 10월에 지었고 글씨는 11세손 희진이 써서, 비문을 지은 이듬해인 1979년 4월 호남 유림 명의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원래 화순에 1979년 세워졌다가 1990년대에 광주로 옮겨 세웠다. 문중 선조인 김감 신도비와 함께 있으며 보호각 등 별도의 보호 시설은 없으나 현대에 세운 화강석 비석이라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관리 주체는 광산 김씨 종중이다.
옆에는 김성원의 할아버지인 김감의 신도비가 있다. 김감은 문과에 급제했으며 충효 마을 광산 김씨 낭장공파 입향조 김문손의 아들이다.
[의의와 평가]
1979년에 세워 원래 위치를 떠나 옮겨 세운 비석이지만 조선 시대 정유재란 시기의 김성원의 행적과 순효 사실, 광주와 화순의 향토학 현장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