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94 |
---|---|
한자 | 申楗 |
이칭/별칭 | 사수(士樹),덕계(德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540년 - 신건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552년 - 신건 효경, 춘추 섭렵 |
활동 시기/일시 | 1579년 - 신건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79년 - 신건 선전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신건 금산 전투에서 순절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신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47년 - 신건 금산 종용사 배향 |
거주|이주지 | 신건 거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주도리 |
사당|배향지 | 금산 종용사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167-2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평산(平山) |
대표 관직 | 병조 참의 |
[정의]
전라도 화순 지역에 입거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무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수(士樹), 호는 덕계(德溪).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신미례(申未禮)이다.
[활동 사항]
신건(申楗)[1540~1592]은 재지(才智)가 뛰어나서 나이 13세에 효경(孝經)과 춘추(春秋) 등을 섭렵하고, 부모상을 당해서는 여묘 살이를 하며 슬퍼함이 예제를 넘었는데, 그 골짜기를 효자동(孝子洞)이라고 하였다.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宣傳官)으로 가리포 수군 첨절제사(加里浦水軍僉節制使)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의병 수백 명과 군량 백석을 모아 평양(平壤) 행재소(行在所)에 직행하려다가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의막에 종군하여 적을 방어할 계책을 올렸다. 하나는 민심을 무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리를 점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천시(天時)를 추찰(推察)해야 한다고 하니, 고경명이 크게 기뻐하여 우익(右翼)을 위탁하였다. 전투에 임하여 10여 명의 적을 참살하고, 고경명과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 원종훈(宣武原從勳)에 책록되었고, 병조 참의에 추증하였으며, 금산(錦山) 종용사(從容祠)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