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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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嗣宗 |
이칭/별칭 | 석천(石川),찬화(贊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출생 시기/일시 | 1543년 - 이사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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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이사종 의병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605년 - 이사종 무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이사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04년 -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 건립 |
활동지 | 이사종 활동지 - 함경도 안변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찬화(贊華), 호는 석천(石川). 완창대군(完昌大君)의 8대손이며, 순양군(順陽君) 이석공(李石公)의 증손(曾孫)이고, 증 참의(參議) 이희춘(李希春)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사종(李嗣宗)[1543~1634]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성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이소종(李紹宗)과 장남 이정립(李廷立)과 함께 창의하여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았다. 그 후 충주(忠州)와 양주(楊洲)에서 왜적과 싸워 수십 명을 죽였다. 양주에 있을 때 순화군(順和君)의 호위군과 만나 그 일행과 동행하여 강원도(江原道)를 거쳐 함경도(咸鏡道)로 들어가면서 안변(安邊)에서 적을 베고 빼앗은 물건들이 많았다. 이후 이사종은 의주(義州)에 있는 행재소(行在所)로 갔다. 1605년(선조 38)에 무과에 급제하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행재소에서 선조를 잘 모셨다고 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영조 때 호남 유림(儒林) 임장수(林長洙) 등이 상소(上疏)하여 정려(旌閭)의 은전이 내리고 또 사종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에 증직되었다. 1864년(고종 1)에 좌승지 경연 참찬관이 추증되었다.
순조 4년(1804)에 이사종의 후손인 이득현(李得鉉)이 화순군 동면에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에 글을 새겨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이사종, 이소종, 이정립과 병자호란 때 창의한 이정추, 이정기, 이정근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