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72 |
---|---|
한자 | 金仁甲 |
이칭/별칭 | 춘경(春卿),춘유(春逾),오재(梧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출생 시기/일시 | 1564년 - 김인갑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김인갑 의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김인갑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6월 - 쌍봉리 충신각 건립 |
활동지 | 김인갑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군, 경상남도 진주시 일원 |
묘소 | 쌍봉리 충신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춘경(春卿) 또는 춘유(春逾)이고, 호는 오재(梧齋)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 김조언(金朝彦)이고, 어머니는 절강 편씨(浙江片氏)이며,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김인갑(金仁甲)[1564~1593]은 1579년(선조 12)에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 도사(都事)를 거쳐 1591년 훈련원(訓練院)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김인갑은 모친상이라서 시묘 살이를 하고 있었다. 1593년 시묘를 마친 후 동생 김의갑(金義甲)과 함께 창의하였으며 영남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순천(順天), 하동(河東), 곤양(昆陽)[현 경상남도 사천시]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후에 일본군의 방어를 뚫고 진주성(晉州城)으로 들어갔다. 9일 낮밤을 수성(守城)하였으나 결국 6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었고, 이때 김인갑은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절(殉節)하였다.
[저술 및 작품]
1803년(순조 3)에 유고집으로는 김선배(金善培)가 펴낸 『오재 서암 송은공 문집 합록(梧齋西庵松隱公文集合錄)』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김시엽의 아버지인 오재(梧齋) 김인갑(金仁甲), 김인갑의 동생인 서암(西庵) 김의갑(金義甲) 그리고 송은(松隱) 김시엽의 전기 자료를 모은 것이다. 『김 판관 오재공 문집(金判官梧齋公文集)』이 국립 중앙 도서관에는 소장되어 있다.
[묘소]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쌍봉리(雙峰里)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1872년(고종 10) 지금의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김해 김씨의 충신각(忠臣閣)이 세워졌다. 쌍봉리 충신각은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싸움[1593년]에서 전사한 김인갑, 김의갑, 김시엽 3인의 충의(忠義)를 기리고 있다. 이 충신각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5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