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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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燁 |
이칭/별칭 | 화백(華伯),송은(松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출생 시기/일시 | 1589년 - 김시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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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김시엽 의병 활동[1624] |
활동 시기/일시 | 1627년 - 김시엽 의병 활동[1627]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김시엽 의병 활동[1636]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김시엽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6월 - 쌍봉리 충신각 건립 |
활동지 | 김시엽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 충청남도 천안 일원 |
묘소 | 김시엽 묘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산 80 |
묘소 | 쌍봉리 충신각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화백(華伯),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김인갑(金仁甲)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이며 부인은 광산 노씨(光山 盧氏) 진사(進士) 노백붕(盧百朋)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시엽(金時燁)[1589~1637]은 1621년(광해군 13)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1627년(인조 5)의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1636년(인조 14)의 병자호란 때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과 순창 현감(淳昌縣監) 최온(崔蘊)의 격문(檄文)이 12월 18일에 화순에 도착하자 이 소식을 듣고 동생 김시헌(金時憲)·김시욱(金時郁)과 함께 거의할 것을 도모하였다. 이에 화순에서 장사(壯士) 60명을 모아 창의한 후 옥과 현감 이흥발의 막하에 나아갔다. 그리하여 충청남도 천안(天安)까지 북상했지만 강화(講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술 및 작품]
유고집으로는 1803년(순조 3) 김선배(金善培)가 간행한 『오재 서암 송은공 문집합록(梧齋西庵松隱公文集合錄)』이 있다.
[묘소]
묘는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산 80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承旨)로 추증(追贈)되었다. 1872년(고종 10)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 김해 김씨의 충신각(忠臣閣)이 세워졌다. 쌍봉리 충신각은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인갑, 김의갑, 김시엽 3인의 충의(忠義)를 기리고 있다. 충신각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5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