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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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樹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모산리 산 15-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희면 |
건립 시기/일시 | 1570년 - 죽수서원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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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613년 - 죽수서원 중수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죽수서원 철폐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1년 - 죽수서원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복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6년 - 죽수서원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로 복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9월 29일 - 죽수서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죽수서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9년 - 죽수서원 동재 신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죽수서원 관리사 신축 |
현 소재지 | 죽수서원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모산리 산 15-3] |
성격 | 서원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사우] |
측면 칸수 | 2칸[사우] |
관리자 | 전라남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개설]
죽수서원(竹樹書院)은 기묘사화 때 능주로 유배되었다 사사(賜死)된 조광조[1482~1519], 그리고 조광조와 인연이 깊은 양팽손[1488~1545]을 모신 서원이다. 1568년(선조 1) 조광조가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자 1570년에 유배지였던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 천일대에 서원을 짓고 ‘죽수’라고 사액(賜額)되었다.
[위치]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에 위치한다. 화순읍에서 전라남도 보성 방면으로 약 10㎞ 거리에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변천]
기묘사화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조광조가 1568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이듬해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자 서원 건립이 추진되었다. 1570년에 능주 목사 조시중과 능주의 사림들이 협조하여 조광조의 유배지였던 한천면 모산리 천일대에 서원을 지었다. 이때 조광조의 유배와 사사를 한탄했던 화순의 사림 문홍헌이 서원의 터를 제공하였고 자기 집 노비를 서원 건립과 수호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서원 건립과 함께 곧 ‘죽수’라고 사액되었다. 이후 60년이 지난 1630년에 전라도 유림과 김장생의 발의로 양팽손을 죽수서원에 추가 배향하였다.
죽수서원은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 명령에 따라 훼철된 바 있으며, 훼철 뒤에 이곳에 단을 만들어 제향을 이어 오다가 능주의 유림과 후손들이 서원 복설을 추진하였다. 1971년에 양팽손의 출생지인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사우를 준공하였고, 1981년에 한양 조씨의 노력과 제주 양씨의 협조로 원래의 위치인 한천면 모산리에 사우를 이전하고 새롭게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어 1989년에는 사우와 강당만 있던 서원에 동재를 신축하여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입구에는 서원을 알려주는 홍살문이 있으며, 그 앞에 하마비(下馬碑)와 ‘죽수서원’ 표지석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호박돌로 단장한 계단이 외삼문 앞까지 이어진다. 서원의 외삼문 앞에는 죽수 서원 원지 복원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이 원래의 죽수 서원 터임을 가르쳐준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솟을삼문으로 ‘고경문(高景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강당이 있다. 강당에는 ‘죽수서원’ 현판이 걸려 있는데, 강당 이름은 ‘정윤당(精潤堂)’이다. 강당 안은 모두 우물마루를 깐 통간으로 처리하여 교육 장소로 활용코자 하였다. 강당 맞은편에는 동재가 있다. 보통의 서원은 강당을 중앙에 배치하고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는 구조인데, 죽수서원은 강당과 동재가 마주보는 변형된 구조이다. 동재에는 ‘박약재(博約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집으로 앞 반 칸은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안쪽은 모두 온돌방으로 꾸며 학생들이 기숙하던 시설임을 알려주고 있다. 동재는 1987년에 건립하였다.
내삼문과 좌우에 둘러진 담장에 의해 제사 지내는 곳과 교육하는 곳으로 분리된 전학 후묘의 형태인 죽수서원은 3.5m의 1단 높이에 제향 공간이 꾸며져 있다. 내삼문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죽수 서원 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내삼문은 ‘조단문(照丹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삼문이다. 사우는 ‘천일사(天日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앞뒤로 퇴를 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사우 안에는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현황]
적려지 옆에는 1667년(현종 8)에 능주 목사 민여로가 세운 유허비가 있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으며 비액 전서는 민유중이 썼다. 비석 위에 세운 비각은 정조 대에 지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근거는 없으며, 비각 안에 걸린 중수기에 의하면 1876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죽수서원과 관련 있는 유적으로는 조광조의 귀양과 관련된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和順 靜菴 趙光朝先生 謫廬遺墟碑)가 있다. 조광조가 능주에 귀양을 와 거처하던 집은 관노의 3칸 초가집으로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일대이다. 이 초가를 복원하여 1979년 8월 3일에 전라남도 지방 문화재자료 제41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적려지 초가 옆에는 조광조의 영정각과 강당도 새로 지어 경내를 새로 단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죽수서원은 전라남도 지방에서 순천시의 옥천 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사액된 서원이다. 기묘 사림의 상징인 조광조의 귀양지이고 사사(賜死)된 지역인 능주에 세워진 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의 전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죽수서원의 건립과 유지에 서인, 노론의 노력이 깃들어져 있어 서원과 당쟁의 관계를 살피는 데에도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죽수서원은 조광조 문집의 간행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1681년(숙종 7)에 박세채가 편집하여 전라도 남원에서 간행하였는데 판본이 죽수서원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서원이 책을 보관하고 간행하던 곳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