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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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塘寺掛佛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217[동촌리 3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경미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금당사에 있는 불화.
[개설]
괘불은 전각에 봉안된 불화와 달리 10m 이상이 되는 대형 불화로 많은 대중들이 모이는 부처님오신날, 영산재, 천도재, 수륙재, 기우재 등의 야외 법회에 법당 앞 마당에 높이 걸어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불화이다. 괘불은 특별한 의식을 위한 대상이기 때문에 일반 불화와는 달리 독특하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다.
괘불화는 화기에 기록된 괘불, 괘불탱이라는 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불화를 건다’는 의미에서 의식에 필요한 불화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괘불화 가운데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예는 1622년 죽림사의 세존 괘불 탱화이다. 금당사 괘불탱은 1692년(숙종 18)에 조성된 괘불로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화면 가득 화려하게 장엄된 여래를 단독으로 그린 괘불로 길이 8.7m, 폭 4.7m로 마본이다. 화면 중앙에 있는 관을 쓴 관음보살 입상은 광배 밖의 부분에 적색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청색계와 녹색계의 광선이 휘날리도록 표현하였고 좌우에 각각 작은 화불을 10구씩 두었다. 머리에 쓴 보관에는 봉황과 불상의 얼굴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관음 보살 입상은 녹색의 원형 두광과 붉은색의 거신광을 두르고 그 밖으로 화염문이 광선처럼 휘날리게 표현되었다. 두 손에 용화수 가지를 들고 서 있는데 얼굴은 둥글넓적하고 원만하며 이목구비는 작게 묘사되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그려졌다. 화려한 장식과 문양의 옷 모습이 화면을 압도한다. 채색은 주홍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녹색과 분홍색, 흰색을 이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보관의 금구(金具)는 연꽃과 모란 당초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오른쪽 다리를 약간 오른쪽의 밖을 향하여 벌리고 있고, 상체는 하체보다 크게 묘사되었다.
보살 입상은 화면을 압도할 정도로 크고 차게 그렸으나 화불은 매우 작은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화염문도 일정한 방향이 아닌, 옆의 위 방향으로 휘날리도록 하였지만 간혹 화염문 사이로 끼어들어가도록 표현하는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원형의 녹색 광배는 다시 흰색, 녹색, 적색, 백색 순으로 안쪽으로 원을 하나씩 더 그린 형식을 이루고 그 안에 화려하게 부처의 얼굴을 묘사하였다. 어깨선을 검은색으로 두른 듯 표현되었는데 그것은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거신광은 적색으로 넓게 두른 후 안쪽으로 연주문과 국화문을 연이어 표현하였고 그 안쪽에는 화문을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시주질에 의하면 공양 시주를 비롯하여 바탕, 포, 초지, 후배지, 주홍, 하엽, 오색녹, 아교, 말장, 원경, 원환, 복장 등의 시주자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다.
금당사 괘불탱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을 잘 표현하여 「통도사 관음보살 괘불 탱화」 및 「무량사 미륵보살 괘불 탱화」 등과 함께 보살 괘불 탱화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징]
금당사 괘불탱은 화기에 따르면 명원, 허헌, 치헌, 위청이라는 화원이 1692년에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의 표시로 말없이 연꽃가지를 들었을 때 열두 제자 중 가섭만 미소로 답하였다는 염화시중의 이야기를 들어 이 상을 ‘석가’라고도 하고, 화신 보살과 봉황이 그려져 있어 미래에 올 미륵보살로 보기도 한다.
화불은 거신광 바깥으로 좌우에 각각 10구와 위쪽에 두어 본존불을 둘러싼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괘불은 충청남도 「무량사 미륵보살 괘불」[1627], 충청북도 「법주사 괘불」[1766], 경상북도 「적천사 괘불」[1695], 「보경사 괘불」[1708], 「수도사 괘불」[1704], 「개심사 괘불」[1772] 등이 있고 특히 화불이 금당사 괘불탱처럼 배치된 구도는 「무량사 미륵보살 괘불」, 「개심사 괘불」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금당사 괘불탱의 주존상인 보관을 쓴 보살의 당당한 모습, 어깨가 각을 지어 떨어지듯한 표현, 근엄한 분위기 등은 조선 효종·숙종 대의 특징인데 이 괘불은 당당하면서 약간 상반신을 크게 그린 특징이 있다. 구도면에서 협시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하여 본존불을 강조하였다. 색채는 주로 하엽과 분홍·흰색 등의 중간톤을 사용하고 있어 은은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괘불의 명칭을 쓰지 않고 일반 명칭을 쓴다는 것은 괘불에 대한 구체적 관심사가 결여되었던 것, 또는 괘불을 포괄적 관심사로 수용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 즉 괘불에 대한 일반적 관심은 밖에 내어 거는 불화, 그리고 대단히 큰 불화라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고 불화의 내용이나 그 내용에 따라 신앙 형태의 유형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는데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존도 형식의 이 괘불화는 「흥국사 괘불」과 마찬가지인데 「오불회상도」에서나 아니면 팔상도의 「전법륜상도」에서 볼 수 있는 보관을 쓴 여래상으로 그려졌다.
[의의와 평가]
1692년에 명원, 허헌, 치헌, 위청이 조성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을 잘 표현하여 「통도사 괘불 탱화」와 「무량사 미륵불 괘불 탱화」 등과 함께 장엄형 괘불 탱화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라북도에는 4점의 괘불이 있는데 이 가운데 3점의 괘불은 「영산회 괘불」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확인할 수 있지만 「금당사 괘불」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 의미는 도상의 구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저 괘불탱이란 명칭을 쓰고 있는 「금당사 괘불」은 독존도를 이루고 있다. 「영산회 괘불탱」이라는 명칭이 붙은 괘불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한 군집도(群集圖), 즉 영산회상을 이루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괘불탱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하는 「영산회상도」이기 때문에 화엄 신앙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금당사 괘불」은 미륵보살을 그리고 있어서 소의경전이 다른 신앙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입상의 독존상은 그 존상을 거대하고 웅장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보관을 비롯한 법의의 장식이 매우 호화롭고 그와 같은 불신의 장엄함이 보다 널리 시방에 미치는 것을 방광의 5색 무늬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