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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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紅氏-明堂- |
영어의미역 | Story of Mr. Hong's Propitious Spot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명순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서 홍씨네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홍씨네 명당 이야기」는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덕산읍 용몽리에 사는 조용철[남, 74]에게서 채록한 것으로, 1997년 편찬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진천에 참판 벼슬을 한 홍씨가 있었다. 혜경궁 홍씨를 배출한 그 집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참판 벼슬한 이가 서울 갔다가 말을 타고 천안을 거쳐 내려오다 보니까, 어떤 남루한 옷을 입고 피립파한을 한 이가 아랑 같은 것을 어깨에다 짊어지고 “묘자리 사슈. 묘자리 사슈”.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홍 참판이 말에서 내려, “아, 그 여보슈. 뭘 팔려고 그럽니까?” 하자, “아, 묘자리 팔러 댕겨요.” 하고 대답하였다.
홍 참판이 “얼마 합니까?” 했더니, “천 냥짜리, 오백 냥짜리, 만 냥짜리 많지, 뭘 물으며 그럽니까?” 한다. 그리하여 “선상! 나는 진천 범바우(범바위)에 사는데 우리 집으로 가시것습니까?” 하였더니, “아, 난 못 갑니다.” 하고 딱 자른다. 그래서 “그럼 한번 찾아 주시지요.” 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 다음에 시간 있으면 한번 가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묏자리 파는 이와 작별하고 홍 참판은 집으로 왔는데, 얼마 후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그 사람이 찾아왔다. 홍 참판은 반갑게 맞이하여 의복도 새 것으로 주고 방도 하나 내주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잘 대접하면서 편하게 대했는데,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록 묏자리 파는 사람은 술만 먹고 잠만 자고 돌아다니기만 했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더니 하루는 “주인 양반, 우리 산책 좀 갑시다.” 하였다. 홍 참판이 옳다 하고 말을 두 필 마련하자, “내가 가는 데로 따라오시오.” 하면서 앞장을 섰다. 그리고 말을 타고 그 동네 앞에 나가서 뒤를 가르치면서 “저 보금칠각형이 보배칼을 빼 낸 동생이 고안했지 거기다가 쓰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거기서 진천읍내로 들어가서 덕소면 덕리고개를 지나 어건이 뒤로 가더니 “저기 저 개울물, 저기 저 산 밑, 골짝으로 소가 하나 있다고. 그 소 위에 묘자리를 쓸 것 같으면 노루 위주라고 굉장히 좋은 자리인께 거기다 쓰시오.” 하고는, “나는 인저 볼일 다 봤으니 가요.” 하고 말했다.
홍 참판이, “그러지 말고 집터꿈 하나 마련해 주슈.” 하자 묏자리 잡는 사람이, “앗다, 욕심은 천하대질. 둘 잡아 줬는데 또 집터까지 마련해 주라구. 집터는 지금 동네 끄트머리 산 밑에 거길 다지면은 대장부 날 자리니 거기다 지라고.” 하고 나서 하는 말이, “그런데 이 산자락 밑이 내려오다가 끊어지면 당신네 운이 다 끊어지는 줄 아시오.”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일합방 이후 산자락이 끊어진 뒤로 홍씨네 집안도 운이 다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홍씨네 명당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명당 얻기’가 주요 모티프이다. 풍수담은 보통 명당을 얻음으로써 발복(發福)을 한다는 내용이 많으나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화를 부른다는 교훈도 내포하고 있다. 「홍씨네 명당 이야기」 역시 홍 참판이 지관의 도움으로 명당을 얻었으나 계속되는 욕심으로 결국 운이 끊어지는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