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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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aeugae-maeul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포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남 |
[정의]
경기도 시흥시 포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새우개마을은 조선시대 인천부의 가장 남쪽에 있던 신현면의 중심지였다. 현재도 법정동인 포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새우개 당집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마을은 동편마을이라 부르고, 서쪽에 있는 마을은 서편마을이라고 부른다.
[명칭 유래]
새우개마을이란 명칭은 조선 후기 이 마을 서편에 국시랑과 능골을 거쳐 이웃한 구시미마을을 왕래하기 위해서 새롭게 고갯길을 만들었고, 그 고갯길의 이름을 새로 만든 고개라 하여 ‘새고개'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새고개'는 후대에 내려오면서 ‘새우개'로 변하였다. 일설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던 이곳에서 새우가 많이 잡혀서 ‘새우개'라 했다는 설이 있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새우개마을이 속했던 행정 지명은 인천부 신현면 포동이었다. 신현면은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와 1899년(고종 36)에 발간된 『인천부읍지』 등에는 신고개면(新古介面)으로 되어 있고, 1912년 발간된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과 여타 읍지 등에는 신현면 또는 신고개면으로 각각 기록되었다. 새고개, 신고개는 모두 한자로는 ‘신현(新峴)'인데, 신현면은 인천부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면이었다. 새우개마을은 조선시대 신현면의 중심지였다.
2018년 현재도 새우개마을이 속한 행정동의 명칭이 신현동이다. 또한 새우개마을은 법정동인 포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포리초등학교와 걸뚝 사이에 있으며 마을 중앙에 자리한 새우개 당집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마을은 동편마을이라 부르고, 서쪽에 있는 마을은 서편마을이라고 부른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의 수령이 500여 년인 점을 고려할 때 조선 중기부터 주민들이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1936년 6월 21일 『동아일보』 기사에 새우개의 인구수가 770~800명에 호수는 150여 호로 대부분 어민이었다는 내용으로 볼 때, 새우개마을은 이 시기가 번성기로 짐작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배가 드나들었으나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어업 활동이 다른 지역보다 3~4일이 늦어져서 어업이 쇠퇴해졌다고 한다. 특히 1960년 포리호 납치 월북 미수 사건이 어업의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새우개마을에 최초로 입향한 성씨는 나주 온씨(羅州溫氏)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익녕군(益寧君) 후손이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초와 7월 초에 길일을 택하여 동편마을과 서편마을 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왔으나, 최근에 중단되었다. 새우개마을 입구에 세웠던 장승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자연환경]
학미산과 낮은 야산들이 어깨를 걸쳐 마을을 감싸고 있고, 인근에 내만(內灣) 갯골과 드넓은 폐염전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앞으로 포동빗물펌프장으로 연결되는 수로가 있다.
[현황]
새우개마을에는 2017년 현재 포리초등학교, 신현행복건강센터, 시흥교통 버스 차고지, 게이트볼장 등이 있다. 인근 도로의 신설로 접근성이 좋아 점점 임대형 공장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