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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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韓氏文翼公派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산62-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조성 시기/일시 | 1627년 - 한준겸 묘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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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629년 - 한준겸 신도비 건립 |
조성 시기/일시 | 1652년 - 한준겸 신도비 재건립 |
조성 시기/일시 | 1701년 - 한이성 묘비 및 한두상 묘갈 건립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57년 - 한준겸 출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80년 - 한회일 출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06년 - 한이성 출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27년 - 한두상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한준겸 사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42년 - 한회일 사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한이성 사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87년 - 한두상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636년 - 한준겸 묘 이장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5월 16일 -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산62-4 |
성격 | 묘역 |
양식 | 원형 합장 단분 |
관련 인물 | 한준겸|한회일|한이성|한두상 |
소유자 | 청주 한씨 문익공파 종중 |
관리자 | 청주 한씨 문익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 있는 조선시대 청주 한씨 문익공파의 무덤이 있는 지역.
[개설]
조선 전기의 문신 문익공(文翼公) 한준겸(韓浚謙)[1557~1627]과 아들 한회일(韓會一)[1589~1642], 손자 한이성(韓以成)[1602~1634], 증손자(曾孫子) 한두상(韓斗相)[1627~1687]의 묘가 함께 조성된 4대에 걸친 묘역이다.
한준겸의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한효윤(韓孝胤),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1586년(선조 19)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그의 딸이 인열왕후(仁烈王后)로 책봉되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한회일의 자는 형보(亨甫), 호는 유주(柳洲)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남양부사를 거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한이성의 자는 경백(敬伯)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나 일찍 죽었다. 한두상의 자는 이망(而望)이다. 문음으로 관직에 올라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고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이르렀다.
[위치]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은 시흥시 거모동 산62-4에 있다. 영동고속도로 군자 요금소 우측의 산기슭에 있다.
[변천]
한준겸 묘는 본래 강원도 원주에 있었으나 1636년(인조 14) 경기도 안산군 대월리[지금의 시흥시 거모동]으로 이장하였다. 신도비는 1629년(인조 7년) 처음 세웠다가 묘를 이장한 후 1652년(효종 3년) 다시 세웠다.
[형태]
한준겸 묘는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 중앙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석물은 봉분 앞에 상석·향로석·장명등이 있고, 좌우에 문인석·동자석·망주석 각 한 쌍, 봉분 좌측에 묘표(墓表)가 있다. 문인석은 복두(幞頭)를 쓰고 홀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한회일 묘는 한준겸 묘의 우측에 있다.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와 합장묘이다. 묘역에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묘비 등의 석물이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하였고, 육각의 향로석은 운족(雲足)을 갖추고 있다.
한이성 묘는 한준겸 묘의 좌측에 있다. 부인 죽산 안씨(竹山安氏)와 합장묘이다. 묘역에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문인석 대신 높이 1.56m의 동자석을 세워 놓았다.
한두상 묘는 한준겸 묘의 바로 아래에 있다. 묘역에는 문인석, 망주석, 상석, 향로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다. 복두를 쓴 높이 1.78m의 문인석은 소매의 윗부분이 여러 번 겹쳐서 주름이 잡혀 있다.
[금석문]
한준겸의 신도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장대한 귀부는 생동감 있고, 대리석의 비신과 이수는 문양이 화려하며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한회일의 묘갈(墓碣)은 네모진 받침돌 위에 상부가 둥근 비신을 세운 형태이다. 비문은 신익성(申翊聖)이 짓고 전액(篆額)하였으며 글씨는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 오준(吳竣)이 썼다. 한이성의 묘비는 1701년(숙종 27) 세워진 것으로 비문을 지은 사람은 알 수 없고, 글씨는 그의 손자 한종로(韓宗老)가 썼다. 한두상의 묘갈은 한이성과 마찬가지로 1701년(숙종 27) 세워졌다. 비문은 홍문관부제학(弘文館大提學) 이봉징(李鳳徵)이 짓고, 함열현감 한종로가 썼다.
[현황]
한준겸·한회일·한이성·한두상 4대에 걸친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은 1997년 5월 16일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준겸 묘와 신도비를 비롯한 청주한씨문익공파묘역은 조선 후기 묘제와 석물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