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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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思竣 |
영어공식명칭 | Jeong Sa-jun |
영어음역 | Jeong Sa-jun |
영어공식명칭 | Jeong Sa-jun |
이칭/별칭 | 근초(勤初),성은(城隱)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욱 |
출생 시기/일시 | 1553년 - 정사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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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23년 - 정사준 옥계서원 배향 |
출생지 | 정사준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
묘소|단소 | 정사준 묘소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동산리 탑현산 신원 |
사당|배향지 | 옥계서원 - 전라남도 순천시 명말2길 20[연향동 1023-3]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관직 | 선전관|결성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서 활약한 순천 출신의 무관.
[가계]
정사준(鄭思竣)[155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근초(勤初)이며, 호는 성은(城隱)이다.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1520~1580]이고, 동생은 현감 정사횡(鄭思竑)[1563~1640]이다. 정사준의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며 장인은 현감 홍잠(洪潛)[1524~1589]이다. 순천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정사준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으로 관직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모친상을 당하였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제(喪制)[부모나 조부모가 세상을 떠나서 거상 중에 있는 사람]의 몸으로 전라좌수영의 이순신(李舜臣)[1545~1598] 휘하에 자원 종군하여 이순신의 군관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이순신의 명을 받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지역인 광양만 전탄(錢灘)[현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에 복병장으로 파견되어 정예병을 매복시키고 일대의 해안 지역을 빈틈없이 방어하였다. 또한, 의주행재소로부터 군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한 뒤, 동생 정사횡과 조카 정빈(鄭𢣐)[1566~1640], 동향의 훈련봉사 이의남 등과 함께 군량 천여 석을 모아 행재소로 수송하였다. 임진년 늦가을에 순천만에서 출발한 이 의곡선은 서해 뱃길을 올라가다가 풍랑과 한파로 인해 온갖 고난을 겪은 후 1차 수송에 실패하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동생 정사횡에게 수송의 책임을 맡겨서 정빈과 함께 재차 강행케 하여 끝까지 의주행재소까지 의곡조달의 임무를 완수하여 이순신과 조정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임진왜란 7년 전쟁 기간 가운데 해전의 승첩 과정에 있어서 정사준이 세운 전공은 한둘이 아니었다. 독창적인 조총제작법을 스스로 창안하여 자신이 직접 총포를 제작함으로써 이를 통제사 이순신이 조정에 보고한 후 관내에 보급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정유재란 시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순천 지역에 당도하였을 당시 모든 군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물론, 일상의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매사를 뒷바라지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결성현감(結城縣監)[현 충청남도 홍성군]을 지냈다.
[묘소]
정사준의 묘소는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동산리 탑현산의 신원에 부인과 함께 부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정사준은 1802년(순조 1)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겸경연참찬관에 증직되었다. 1812년(순조 11)에 가선대부병조참판에 가증(加贈)되었다. 1823년(순조 23)에 순천의 옥계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