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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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Juldarigi(Tug of War) |
영어음역 | Juldarigi(Tug of War) |
영어공식명칭 | Juldarigi(Tug of War) |
이칭/별칭 | 줄당기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의 여러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서로 편을 나누어 볏짚으로 만든 줄을 당기며 풍요를 기원한 민속놀이.
[개설]
순천 지역에서는 여러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에 거행했다. 집마다 볏짚을 거두어 줄을 꼬아서 만든 줄로 동편과 서편 혹은 위편과 아래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기며, 한해의 풍흉을 점치고 마을 사람들 간의 단합과 화목을 도모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민속놀이이다.
[구성]
순천 지역에서 큰 놀이로 거행된 줄다리기는 남문 곁에 있는 옥천을 사이에 두고 남문 밖과 성안으로 나누어진 줄다리기와 인안동 대대마을[현 순천시 도사동]의 동편·서편의 줄다리기, 대대마을과 순천시 해룡면 해창마을의 줄다리기, 그리고 순천시 덕흥동 오림마을의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줄다리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남문내외진과 오림마을은 정월 보름날 밤에 줄을 당기고 대대마을은 16일에 한다. 신전놀이[승전놀이]는 17일까지 계속된다. 마을에 큰 변이 생기면 해를 걸러서 하는 때도 있었고, 정월에 마을에 초상과 같은 불길한 일이 일어나면 날받이를 해서 다음날로 미루는 때도 있었다. 남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줄다리기는 성 밖을 ‘순천 남문외진’이라고 하고, 이 줄에는 문밖의 남쪽에 있는 장천·저전 마을과 그 이남의 순천시 도사동, 별량면, 전라남도 여수시 등지에 거주하는 줄다리기꾼들이 동원되었고, 편장은 좌수가 맡았다. 한편 성내를 ‘남문내진’이라 하고 문안과 북편에 있는 순천군 성내·서면 지역과 순천군 황전면·월등면·쌍암면의 줄다리기꾼들이 모여들었고 편장인 부사가 직접 줄등에 타고 지휘를 하였다. 대대마을의 줄다리기는 마을 중간에 있는 도랑을 사이에 두고 서편과 동편으로 나누어진다. 도랑을 따라 골목길이 있는데, 대대마을 길이 줄다리기 장소였다. 서편에는 순천군 하사면 신풍리·안지리·간동리·수동리[현 순천시 도사면 안풍리], 순천군 하사면 월평리[현 순천시 도사면 인월리], 순천군 별량면 우산리[현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 별량1구 마을이 합세하여 풍물이 동원된 큰 굿판을 이루었다. 편장은 각 편의 선소리꾼이 줄에 타고 지휘를 했다. 덕흥동 오림마을[현 순천시 도사동]의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줄다리기는 마을 중간에 있는 큰 샘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다. 윗마을에는 고령신씨들이 살고 있었으며, 아랫마을에는 동복오씨들이 살고 있어, 줄다리기로 씨족 세를 가름하기도 하였다. 편장은 주로 윗마을은 신씨 문중에서, 아랫마을은 오씨 문중의 유지가 줄꾼들을 지휘하였다. 원래 숫줄은 남성, 암줄은 여성들이 끄는 남녀 협동 놀이였으나 점차 남성들의 놀이로 변했으나 이후 남녀가 혼성하고 이웃 마을이 합세해서 한다. 이렇듯 줄다리기는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고 마을의 유지가 편장이 되어 총지휘하며 모든 뒷바라지를 해준다. 마을의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고 다니면서 줄다리기꾼을 모집하며 그들의 사기와 기세를 올려준다. 밤이 되면 횃불을 밝혀 줄꾼과 줄을 보호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원래는 당산제가 끝난 후에 걸립해서 깨끗한 집의 짚단이나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들었으나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미리 한가한 시간에 줄을 꼬아놓는다. 오림마을에서는 정월 보름 자시에 당제를 마치고 바로 줄을 꼬아 초저녁부터 줄다리기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미리 줄을 꼬아 몰래 감추었다가 보름날 밤에 줄다리기했다. 근래에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에서 각각 줄을 꼬게 하여 마을 유지들이 좋은 줄을 선정해서 암줄과 숫줄의 구별 없이 외줄을 사용하기도 한다. 남문외진과 대대마을은 음력 동짓달 보름쯤에 아이들이 한 가닥 줄로 된 새끼줄로 골목줄다리기를 한다. 이것이 점점 커져서 섣달그믐날쯤이면 청장년들이 세 가닥 줄로 된 동아줄로 줄을 당긴다. 정월 보름이 가까워지면 아홉 가닥을 엮어 스물일곱 가닥의 큰 동아줄을 만들기 위해 각호에서 짚단을 거두거나 부유한 집에서 다섯 마지기 논에서 나오는 많은 짚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옥천과 이사천 또는 마을 사이를 흐르는 시내[도랑]와 동네의 샘[우물] 등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놀이 방법]
시합의 첫 부분은 아이들이 골목줄에서부터 시작한 줄다리기가 정월 보름이 되면 여러 마을의 줄꾼이 동원되고 줄을 당길 자리가 결정된다. 농악을 앞세우며 줄다리기 선소리에 맞추어 줄을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는 줄 자리로 나간다. 보통 줄다리기는 넓은 길을 이용하거나 보리밭이나 들판 또는 긴 강둑을 이용한다. 줄 자리에 나온 줄 앞에서 편장과 마을 유지들이 고사를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오림마을의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마을 어른들의 심사로 선택된 암숫줄이 아닌 외줄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남문내외진과 대대마을에서는 암줄과 숫줄을 연결하기 위해 갖은 실랑이를 하며 숫줄이 커서 암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시비와 아유, 음담을 하고 놀려준다. 상대편을 설득시켜 숫줄을 암줄 고리 속에 넣으면 숫줄에 참나무 기둥을 비녀처럼 꽂는다. 비녀를 꽂으면 바로 줄다리기가 시작되지만 양쪽의 합의로 고사를 지낼 수도 있다. 줄을 줄 자리에 놓고 지내는 일도 있으나 비녀를 꽂고 줄다리기 준비가 되면 편장과 유지들이 나와 숫줄과 암줄이 교합된 앞에 상을 차리고 용신과 자신에게 헌주와 구축을 올리며 풍농·풍어와 마을의 무탈을 기원한다. 편장의 신호로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편장은 줄 위에 올라타고 지휘를 하거나 줄 중간쯤에서 영기로 지휘를 한다. 힘에 부치면 줄을 땅에 깔아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동네에서 가져온 술과 밥을 먹고 시작한다. 줄다리기꾼들은 옆줄[접줄]에 매달려 신호에 따라 일제히 잡아당기면서 힘을 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줄다리기 소리의 선소리에 맞춰 뒷소리를 내며 기세를 올린다. 남녀노소가 모두 줄에 매달리며 부자지간이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사생결단을 낸다. 대대마을과 같은 큰줄다리기는 그 놀이가 장관이므로 줄다리기를 구경하기 위해 일가친척들이 며칠씩을 먹고 지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줄다리기에서 승리한 편은 풍농과 풍어가 들고 패하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임신을 못 하거나 요통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줄고리를 삶아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다. 줄을 당산나무 선돌에 걸어놓고 방액을 하며 풍요를 기원한다. 선주가 줄을 배에 실으면 연중 고기떼를 끌어올린다고 한다. 남문내진과 남문외진의 줄다리기에서는 지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긴 편이 패한 마을 사람들의 상여를 운상하듯 빈 상여를 메고 들어가 상여 놀이를 하여 상대편을 조롱하고 모든 액운을 버리는 놀이를 한다. 또한, 마을 유지들을 불러 술과 떡, 고기 등을 내놓도록 한다. 오림마을에서는 경기에 패한 편이 찰밥과 떡을 대접하며, 대대마을은 이사천의 금전천 보를 막게 한다. 이처럼 줄다리기는 물줄기를 얻어 두레의 협동과 대동의 힘으로 풍요를 바라는 기속신앙(祈俗信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