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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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興業團軍資金募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11월 - 흥업단에서 김성규와 이만준에게 군자금 모집 임무 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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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22년 4월 - 흥업단 군자금 모집에 가담한 박재화 체포 |
발생|시작 장소 | 흥업단 군자금 모집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박재화|흥업단 |
[정의]
만주 길림성 무송현(撫松縣)에 있는 군정서(軍政署) 부속 흥업단(興業團)의 의성 지역 군자금 모집 활동.
[역사적 배경]
1920년대 초 만주 길림성 무송현에 있는 군정서 부속 흥업단은 군자금 모집 계획을 세웠다. 1920년 11월 흥업단의 단장 김호(金虎)와 외교 부장 김성규(金星奎)는 이만준(李萬俊)에게 20만 원의 자금 조달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만준은 환인현(桓仁縣)의 한교공회장(韓僑公會長) 손경헌(孫庚憲)을 만나 경상북도와 충청도 사정에 밝은 김인제(金仁濟), 최성기(崔聖基), 황문익(黃文益) 등 3명을 소개받고 함께 국내로 들어왔다. 이들은 경상북도의 대구, 경상남도의 밀양·양산 등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경상남북도의 인사를 대상으로 동지 획득에 나섰다. 이만준은 서울에서 경상남북도 거점을 살피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의 박재화(朴在華)는 이들 조직책과 만나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흥업단 군자금 모집에 참여한 경상남북도 인사는 대구의 박수의(朴守義), 권정락(權政洛), 군위의 김종만(金鍾萬), 청도의 이재술(李再述), 경주의 최명해(崔明海), 달성의 우홍기(禹洪基) 등 약 20여 명에 달했다.
[경과]
흥업단은 1921년 3월부터 본격적인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부산 동래, 경상남도 양산, 경상북도 청도·달성·영천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중 1921년 8월 총책임자 이만준은 혼자 청도군 금천면 부호 박순병(朴淳炳) 집 근처에서 상황을 살피다가 청도 경찰서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로 인해 조직이 탄로날 위기에 처했으나 이만준은 끝내 비밀을 잘 지켜, 구류 20일을 받고 복역하고 나왔다. 또 1922년 1월 군자금 모집원은 대구 부근의 팔공산 밑의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에 거주하는 최재교(崔在敎)를 만나 군자금 240원을 제공받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같은 시기 군자금 모집원은 경상북도 청도와 영천에 가서 자금 모집을 추진하였다.
[결과]
1921년 4월 서울에 거주하던 총책임자 이만준의 지시에 따라 이재술, 김우창 등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경상북도 봉화로 이동하던 중 군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흥업단 국내 군자금 모집 관련자들이 대거 검거되었고, 의성의 박재화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