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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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Dure(Farmers' Cooperative Group)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의 벼농사 과정에서 김매기 때 마을 단위로 조직되는 공동노동 관행 또는 풍속.
[개설]
두레 방식으로 김매기를 시행한 시기를 대체로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편화 이후라고 한다. 이앙법은 직파법보다 노동력이 절약되고 수확량이 증대되는 잇점이 있지만, 노동력이 일시에 집중적으로 동원해야 하는 농법이었다. 따라서 단기간에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생산력 증대를 꾀할 수 있는 방식이 이양법이기에, ‘두레’라고 하는 공동노동 조직을 구성하여 이에 대응한 것이다. 한편 두레농경은 두레풍장, 장원례놀이, 두레기싸움 등 농경 민속문화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에서는 두레김매기를 초벌[아시] 맬 때부터 시행한 경우도 있지만 두벌 맬 때가 더 많았다. 두레노동 기간은 통상적으로 1~2일이지만 농경지에 따라서는 4~5일씩 하는 경우도 있다.
[완주군 화산면 상호마을]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상호마을은 하지 무렵에 모를 심고, 초복 즈음에 동네 팽나무 그늘에서 ‘두레공사’[회의]를 하였다. 상호마을에는 두 개의 ‘들독’이 놓여 있는데, 장정들이 힘자랑하거나 청소년들의 입사식[성인식]인 ‘진서턱내기’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두레공사 때 두레조직의 소임과 신청받은 김맬 논의 양으로 두레일수가 결정된다. 소임으로는 공좌상, 부좌상, 총각대방, 조수를 선출한다. 공좌상은 두레를 총괄하는 어른이고, 부좌상은 실질적으로 두레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총각대방은 담뱃불용 화롯불을 들고 다니고, 조수는 농기를 드는 등 심부름을 도맡는다. 이때 풍장패도 꾸려지는데 인원은 상쇠, 중쇠, 징, 장구, 북 등 5명으로 최소화한다.
상호마을 두레는 가호당 한 명씩 보통 25명 정도가 참여하고, 초벌과 두벌 매기를 시행하였다. 풍장패와 함께 두레가 나설 때는 선두에 농기와 영기가 앞장선다. 초벌 매기는 논호미로 흙을 크게 떠 뒤집는 방식인데, 잡초는 묻히고 벼 뿌리는 튼튼해진다. 두벌 매기는 맨손으로 논풀을 훑어서 묻고 솟은 흙덩이를 평평하게 고르는 방식이다. 풍장패도 같이 논에 들어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논매는 소리를 부른다. 김매는 과정에서 이웃 마을과 두레기싸움이 종종 벌어졌다. 처음에는 두레풍장끼리 기세싸움을 하다가 이윽고 두레꾼들까지 뒤엉켜 농기뺏기를 하게 된다. 세벌 매기가 끝나면 칠월 칠석날 술멕이를 하는데, 농사가 잘되거나 부잣집에서 술을 기부함으로써 농사장원례를 치른다.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는 두벌 매기 때 두레가 조직되었다. 만두리는 품앗이로 하였다. 절기로 중복 무렵에 마을 정자나무에서 두레회의가 열린다. 이때 두레조직의 좌상, 총각대방, 화장 등 소임을 정하고, 김맬 논을 신청받은 뒤 두렛날과 품삯을 정한다. 가천리는 작업량에 따라 2~3일 정도 두레가 가동되었다. 가천리는 이웃 동네인 경천리와 상극관례라고 할 정도로 농기싸움을 많이 하였다. 두레가 나면 김매는 논의 가장자리에 농기를 꽂아놓는다. 공교롭게도 가천리와 경천리가 한날한시에 두레 나는 일이 잦았다. 이때 경천리 농기가 가천리 농기를 지나갈 때면 기(旗)절[인사]을 해야 하는데, 무시하고 지나갔다며 시비가 붙기 시작하며 으레 기싸움으로 커진다. 서로 기를 뺏거나 또는 뺏기지 않으려고 육박전을 벌이면서 밀어붙이거나 논으로 처박아 버린다. 가천리 마을은 칠월 칠석날 술멕이 때 이웃 마을과 합굿을 치면서 농악을 즐겼다. 주로 경천리와 용복리가 초청되었다. 술멕이 때는 술김에 들독들기 내기를 흔히 하지만, 이밖에도 절굿대를 입으로 물고 어깨 뒤로 넘기거나, 징에 돌을 담아서 입으로 물어올리는 겨루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