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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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學大師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도남 |
건립 시기/일시 | 1410년 - 무학대사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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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복원 시기/일시 | 1828년 - 무학대사비 중건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372년 - 무학대사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05년 - 무학대사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9월 26일 -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무학대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무학대사비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N37° 50′ 57.3510″, E127° 06′ 25.4683″ |
성격 | 사적비 |
관련 인물 | 무학대사(無學大師)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23㎝[높이]|89.5㎝[너비]|28.5㎝[두께] |
소유자 | 회암사 |
관리자 | 회암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사적비.
[개설]
무학대사[1372~1405]는 고려 말~조선 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自超)이고 호가 무학(無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 아래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1392년(태조 1)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이후 회암사(檜巖寺)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금장암(金藏庵)에서 입적하였다.
[건립 경위]
처음에 만들어진 비석의 지붕과 받침 부분 바로 옆에 중건비가 만들어져 있는데, 비석에 써 있는 내용을 통해 처음 비석은 1410년(태종 10)에 제작되었고, 1828년(순조 28)에 중건비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821년(순조 21) 광주의 유학(幼學) 이응준(李膺峻)이 회암사의 부도와 비석을 파괴하고 사리를 훔친 후 그 자리에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는데, 관찰사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니 이를 두고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다. 이에 당시 임금인 순조가 이응준을 섬에 유배하고 그 무덤을 파 버리라 명하면서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를 다시 세운 것이다.
[위치]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천보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현재의 회암사에 이르는데, 무학대사비는 회암사의 오른쪽 능선에 자리한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보물 제388호]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보물 제389호] 바로 앞에 위치한다.
[형태]
비석의 오른쪽에는 처음 비석에 쓰였던 사각 받침과 연꽃잎 형태의 지붕이 올려 있다. 규모는 지붕이 가로 106㎝, 세로 40㎝, 높이 57㎝, 사각 받침이 가로 180㎝, 세로 87.5㎝, 높이 57㎝, 비석 받침이 가로 144㎝, 세로 54㎝, 높이 23㎝, 비석 받침공이 가로 109㎝, 세로 26㎝이다.
중건비는 낮은 지대석 위에 모죽임을 한 높직한 사각 받침을 놓고 흑청석재의 비석을 세웠으며, 팔작지붕이 그 위에 놓여 있다. 중건비의 규모는 총 높이가 340㎝이며, 비석은 높이 223㎝, 폭 89.5㎝, 두께 28.5㎝, 사각 받침은 가로 147㎝, 세로 90㎝, 높이 65㎝, 지대석은 가로 224㎝, 세로 133㎝, 높이 17㎝이다. 비공은 지름이 89.5㎝, 깊이가 28.5㎝이다.
[금석문]
조선 왕조 개창의 주역인 무학대사의 행적을 담은 사적비로, 생애와 업적, 비석의 파손 과정과 중건비를 세우게 된 경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세종 때 학자로 알려진 변계량(卞季良)이 짓고 공부(孔俯)가 썼으며, 추도비 음기(陰記) 부분은 김이교(金履喬)가 짓고 김겸(金鎌)이 썼다. 비문의 기록으로 무학대사 부도가 1407년(태종 7)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무학대사비는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회암사이다. 현재 무학대사비는 양주 회암사지 관광객들과 천보산 등반객들이 찾는 중요한 명소이다. 또한 주위에 있는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보물 제387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및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과 함께 조선 시대 불교문화 유적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무학대사비의 음기에 각수(刻手) 박지춘(朴枝春)과 석수(石手) 박종석(朴宗錫)·문수조(文守兆)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기술력을 중시하였던 조선 후기 당시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