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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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Like the Crane the Scholar Who is Aloof Form One Art, Yangsan Buddhist Temple Crane Danc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세복 |
[개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의 하나로서 양산 예술혼의 뿌리이다. 양산의 전통 예술을 대표하는 「양산사찰학춤」도 통도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양산사찰학춤」은 신라 646년(선덕여왕 15) 통도사가 창건된 이래 불교대제, 영산재, 수륙재, 생전예수재, 종무대재 때 의례 행사무로 시작되어 통도사 승려들을 중심으로 현대까지 전승되어 왔다.
「양산사찰학춤」은 사찰 의례무로 발생하여 춤사위를 학의 움직임에서 가져왔지만, 다른 학춤과는 달리 춤사위는 학 그대로가 아닌 선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학의 모습이나 노니는 거동 자체를 단순히 보여주기 보다는 학처럼 고고한 정신, 학처럼 우아한 움직임을 선비의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고 멋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양산사찰학춤」에서의 모든 표현은 학 그대로이기보다 인간의 신체를 통하여 춤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유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장수와 고고함, 청순함을 상징하는 학춤]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 무용에는 새나 짐승 등 각종 동물 이름이 붙어 있는 춤들이 많다. 조선시대 궁중정재에 관한 각종 자료에는 학의 탈을 쓰고 쌍으로 추는 학춤이 전해지고 있으며, 함경도 사자놀이나 봉산·강령·은율의 탈춤 속에는 두 마리의 사자 춤이 활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그 의미는 장수와 고고함과 청순함이다. 우리 조상은 이러한 학을 모방하여 춤의 형태로 표현하여 왔다.
학 춤은 근세에 와서 학무와 학춤으로 구분되어 불리고 있다. 학 모양의 탈을 쓰고 지극히 제한된 동작으로 학의 동태를 표현한 것을 학무라 하는 데, 이 학무는 고려시대(1367년)부터 궁중무로 시작되었다. 또한 한성준이 신선무와 함께 등장시킨 학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한영숙에 의해, 현대에는 이흥구에 의해 추어지고 있으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40호(1971년 지정)로 등록되어 있다.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은 주로 경상남도 지역의 사찰 및 민간에서 전승되어 온 것으로 궁중정재 학춤, 한성준의 학춤과 더불어 학을 소재로 한 독특한 개성이 있는 춤이다.
한편, 갓과 도포 차림의 선비 복장으로 학의 동태를 율동적으로 표현한 학춤 중에 현재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1972년 지정)로 지정되어 있는 동래학춤도 있다. 궁중정재의 학춤은 학의 외형을 약간 양식화해서 탈을 만들어 쓰고 학의 움직임을 춤으로 끌어낸 것으로 연화대나 처용이 추어지는 때에 함께 등장하는 순서로 쓰였다. 학, 연화대, 처용의 합설이다.
한성준의 학춤은 학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수용해서 탈을 만들어 쓰고 학의 움직임을 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한 것으로 단독으로도 추고 선녀와 함께 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춤을 배운 한영숙·강선영의 회고에 의하면 주로 쌍학이 많았고 때로는 아동을 출연시켜 새끼 학이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통도사와 학춤의 인연]
김덕명이 추는 「양산사찰학춤」은 앞서 언급한 학춤과는 그 발상이 다르고 전해진 경로도 다르다. 이 춤은 1930년 중반까지 양산 통도사에서 추어졌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불보 사찰로 양산 통도사와 학춤의 인연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불가의 승려들을 통해 어산범패에 나오는 소리와 독경·법고·춤 등으로 전통적인 예능의 맥이 이어져 왔고, 양산 지역에서의 학춤도 그런 승려들에 의해 범패의 부수적인 여흥으로 추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의하면 조선 고종 대의 전승 계보를 보면 1820년 당시 어산종장이었던 이월호[1852~?] 승려로부터 이어져 김설암[1885~?], 신경수[1893~1965], 다음으로 양대응[1897~1972, 법명 선경] 승려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승려 신경수는 당시 명무 승려로서 학춤을 잘 추었다고 하는 데 이를 김말복[전 보광중학교 교장 및 통도사 주지]이 증언하고 있다.
승려 신경수는 1965년에, 양대응 승려는 1972년에 작고했는데, 이 두 승려에게서 김덕명이 춤을 배운 것이다. 또한 2002년 6월 16일 조용명(당시 97세, 통도사 승려,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거주) 승려의 증언에 의하면, 승려 신경수가 통도사 대웅전 앞마당 신도들이 모인 장소에서 미리 준비해 둔 의상인 흰 장삼을 입고 장구 장단에 맞추어 학춤을 추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김말복도 같이 춤을 보았다고 하였으며, 양대응 승려와 최갑환 승려도 신경수의 학춤을 보고 따라 추었다고 하였다.
민간계에서는 양산 금촌에서 동면 내송리로 이사하였던 김두식(1843~1930)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춤에 대한 소질과 능력도 뛰어났다. 당시 김두식은 통도사에 곡수 운반을 전담한 사람으로 40세부터 통도사를 출입하게 되어 사찰 경내에서 여흥이 펼쳐질 때 학춤을 추는 것을 보고 곧잘 추었다고 전해진다.
이 춤을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안화주와 이웃 사송마을의 황종렬(1897~1957)이 전수받아 다시 김덕명(1924년생, 현 「양산사찰학춤」 전승자)에게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양산사찰학춤」의 유일한 계승자인 김덕명과 후계자 최찬수를 비롯한 김순임 그리고 양산학춤보존회 회원들이 양산에서 계승보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산사찰학춤」이란 용어는 ‘양산학춤’과 병행되어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양산사찰학춤」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1972년 문공부 문화재전문위원이었던 서국영(1925, 전 부산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김천흥(1906)이 조사·발굴한 양산 지역의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22호에 의하여 「양산사찰학춤」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양산학춤’에 ‘사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1975년 발굴 조사 당시, ‘통도사 승려에 의하여 학춤이 전승되었다’는 승려 김말북의 증언에 따라 ‘사찰’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6년 『문화재조사보고서』 제245호(1996년 11월, 김옥진·구희서)에 의해 복식이 민간인의 복식이므로 ‘양산학춤’으로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양산사찰학춤’과 ‘양산학춤’을 병행하여 사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학을 선비의 마음으로 표현한 춤사위]
「양산사찰학춤」은 학의 움직임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복식은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이고 학의 모습에서 따온 춤사위와 움직임은 고고한 선비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학처럼 고고한 선비’라는 말 그대로를 춤으로 펼치는 것이다. 「양산사찰학춤」은 춤추는 사람이 그대로 학이 되는 한성준의 학춤이나 궁중정재의 학춤과는 달리 선비의 몸과 마음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다르고, 같은 복식이지만 규범이 단정한 동래학춤보다 춤추는 사람의 멋에서 훨씬 자유롭다.
춤사위는 학의 움직임에서 가져왔다. 학이 날고 노닐고 먹이를 찾는 모습과 움직임을 스물네 가지의 동작으로 구분해서 춤사위로 끌어내었다. 높은 하늘을 날다가 사뿐히 내려앉는 듯 두 팔을 벌리고 들어서서 한 발을 들고 장단을 받은 후 쏜살같이 내려앉는 첫 번째 동작에서부터 목을 길게 늘이고 점잖게 뽐내면서 좌우를 살피는 동작이 학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면서도 그 움직임이 시원한 춤사위로 그대로 펼쳐진다.
한가롭게 거니는 모습,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 먹이를 발견하고 넓게 원을 그리며 먹이를 노리는 모습, 먹이를 찾아내서 찍어 내리는 모습, 신이 나서 으쓱거리는 모습, 유유하게 노닐다가 놀라기도 하고 뛰고 노니는 갖가지 형상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는 원을 그리며 날아갈 준비 자세를 잡고 빠르게 비상하는 학의 모습처럼 춤판을 떠난다.
이렇듯, 「양산사찰학춤」은 사찰 의례무로 발생하여 춤사위가 학의 움직임에서 가져왔지만 기방무의 일종인 한량무에서 파생한 동래학춤과는 달리 춤사위는 학 그대로가 아닌 선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춤사위의 구성]
「양산사찰학춤」은 학의 노니는 모습에서 가져온 스물네 가지의 동작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학춤과 달리 춤사위가 학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서 표현해 낸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표현은 학 그대로이기 보다 인간의 신체를 통하여 춤으로 표현되고 있어 고도의 예술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 구체적인 춤사위는 다음과 같다.
1)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려오는 사위, 2) 사뿐히 땅에 내려앉는 사위, 3) 동료들에게 위엄을 주는 사위, 4) 사방을 두루 살피는 사위, 5) 먹이 찾아 걷는 사위, 6) 먹이 찾아 도는 사위, 7) 좋아서 으쓱이는 사위, 8) 먹이 고르는 사위, 9) 먹이 찍는 사위, 10) 먹이 죽이는 사위, 11) 쉼터 찾아 걷는 사위, 12) 햇볕 쪼이는 사위, 13) 깜짝 놀라는 사위, 14) 일어서는 사위, 15) 오른발 기지개 하는 사위, 16) 왼발 기지개 하는 사위, 17) 짝 어루는 사위, 18) 앞서서 이끄는 사위 19) 먹이 찝는 사위, 20) 먹이 먹이는 사위, 21) 쉬어 노니는 사위, 22) 방향 찾아 도는 사위, 23) 날아갈 준비하는 사위, 24) 날아가는 사위 등이다.
이러한 춤사위 구분을 보면, 학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서 그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해 낸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표현은 학 그대로이기보다 인간의 몸을 거쳐 춤으로 표현되고 있어 고도의 예술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
궁중정재나 한성준의 학춤에서는 학이 탈을 쓰고 추는 춤이라 사람은 허리를 굽힌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추게 되고 그 때문에 학의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춤판으로 끌어내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경우는 우아하고 평화롭게 노니는 학의 모습 자체가 춤이고 사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이 된다. 그러나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에서는 인간이 학이 되어 학과 함께 노닐고 학처럼 자유롭게 멋과 꿈을 펼치는 것이다.
한편, 동래학춤 춤사위의 특징은 학의 너울거림이 주는 여유를 두 팔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너울거리는 사위나, 두 팔을 벌리고 한 다리를 뒤로 뻗고 한 다리를 굽히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두 팔을 벌렸다가 머리 위로 둥글게 모으는 사위가 특징적인 멋으로 꼽을 수 있다. 현재 주무인 김동원을 중심으로 네 명의 춤꾼이 사방으로 서서 추는 동래학춤은 점잖은 학의 모습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양산사찰학춤」은 같은 복식이지만 그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학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학의 마음을 인간적으로 표현한다. 한 발을 들고 뒤로 뻗는 기지개 켜는 사위나 한 무릎을 꿇고 동료에게 위엄을 주는 사위, 혹은 한 발을 들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가 재빠르게 몸을 굽혀 내려찍는 춤사위는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에서만 볼 수 있는 뛰어난 대목이다.
[음악과 복식]
실외에서는 주로 타악(꽹과리·장고·북·징)을 사용하였으나 실내(사랑방·대청·요정·누각)에서 춤을 출 때는 장고, 대금, 피리, 해금, 아쟁 등 삼현육각에 해당하는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둥실둥실한 움직임과 잘 어울리는 굿거리 장단을 기본으로 하며 악기 편성은 그리 까다롭지가 않아 놀이판의 성격에 따라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다. 절에서 재를 지내고 뒤풀이로 나올 때는 영산재에 쓰는 장구만 있으면 되고 기방 놀음에서는 삼현육각에 구음을 곁들이기도 했으며 마을 놀이에서는 꽹매기로도 추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농악 편성만으로도 반주 음악이 가능하다.
「양산사찰학춤」의 복식은 학의 형용을 한 탈이 아니라, 흰 옷과 검은 갓의 전형적인 조선조 선비의 복식이다. 흰 바지저고리에 백색 행전을 매고 소매가 넓은 도포를 입으며 백색 대님에 백색 버선과 미투리를 신고 행의에 망건과 갓, 허리에는 푸른색 술띠를 맨다.
학의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흰색의 몸체와 끝이 검은 날개와 꼬리 깃털, 머리와 목의 일부가 검고 이마에 있는 붉은색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산사찰학춤」은 춤을 위해 학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상을 만든 것이 아닌 조선조 선비의 일상 차림 그대로인 것이 특징이다. 옷 전체가 흰색이고 머리의 검은색 갓을 쓴 선비의 옷차림은 이러한 학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학춤과는 구별되는 특징]
「양산사찰학춤」이 다른 학춤과 구별되는 특징은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복식에서 보면, 궁중 학무와 달리 복식이 남정네들의 출입복으로 꾸밈이 없이 소박하다. 또한 대님 위에 다시 행전을 착용하여 동래학춤과 구별된다. 춤추는 대상으로 보면, 풍류랑들로부터 사찰 승려들까지도 「양산사찰학춤」을 즐겨 추어서 춤추는 대상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다른 학춤과 구별되기도 한다.
또한 「양산사찰학춤」은 경상도 덧배기 춤과 그 형태가 유사하나 춤이 완만하지 않고 춤 폭이 강렬하고, 상하 움직임과 함께 전후 움직임이 강조되고 춤이 시원하고 절도가 있으며 춤사위의 구별이 분명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춤사위에서 학의 동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동작이 많아, 학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동래학춤과는 차별화된다. 그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부드러운 춤사위보다 강렬하면서 개인적 특성이 돋보이며 토속성이 짙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