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42 |
---|---|
한자 | 平山里遺蹟 |
영어의미역 | Pyeongsan-ri Relic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선석열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있는 주거지·환호·무덤으로 구성된 취락 유적.
[개설]
청동기인들은 하천과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구릉 위에 터전을 잡고 농경과 목축을 하였다. 양산 지역에서는 생활용의 주거지와 방어 시설의 환호를 설치하여 취락 생활을 하였다.
[위치]
평산리 유적은 해발 811.5m의 천성산(千聖山) 자락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평탄 대지에 위치한다. 평산동의 북동쪽의 구릉에 해당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평산리 유적은 1996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목탄층을 포함한 주거지 24기와 환호,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평산리 유적은 시굴 조사를 통해 볼 때 주거지가 중심이며, 그 외곽에 환호를 설치하여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주거지는 평면형이 원형과 방형이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삼한시대에 형성된 주거지에 의해 훼손되어 새로운 취락으로 변모되었다.
[출토유물]
유물은 청동기시대와 삼한시대의 토기와 석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무문 토기편과 점판암으로 만든 마제 석부가 있고, 삼한시대의 유물은 와질 토기(瓦質 土器, 회백색 연질 토기)·화로형 토기·회청색 경질 토기·적갈색 연질 토기·옹기·원판형 석제 방추차 등이 있다.
[현황]
평산리 유적은 시굴 조사가 이루어진 후 택지 조성을 위해 제거되었다.
[의의와 평가]
평산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5세기경부터 취락으로 조성되어 삼한시대인 2세기까지 유지되었다. 대규모의 취락은 아니나 당시 가족 단위의 생활을 영위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울산 지역의 검단리 환호 유적과 하대 유적의 청동기인과 삼한인과도 밀접하게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유적을 통해 앞 시대에 조성된 주거지가 다음 시대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면서 폐기되거나 훼손된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