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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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外松- |
영어의미역 | Oesong Village |
이칭/별칭 | 외송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 외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원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송림이 우거진 마을의 바깥쪽에 해당하므로 외송(外松)이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560년경 평해황씨(平海黃氏)가 내송리 안골에 살다 금정산(金井山)[802m] 중머리로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집단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서나무지는 외송마을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들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동래성을 함락한 후 사배고개를 넘어 양산으로 쳐들어 올 때, 두 차례나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 그 피해가 엄청났다고 한다.
이후 주민들이 새로 터를 잡은 곳이 현재의 외송마을이다. 1697년(숙종 22) 발간한 『양산읍지(梁山邑誌)』에는 ‘자관(自官) 13리 상동방(上東坊) 외송(外松)’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외송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사람들이 임진왜란 후 이곳에 정착하면서 외송이라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1680년경 단양우씨(丹陽禹氏)가 입촌하여 지금까지 외송과 사송에 여러 가구가 살고 있다. 1740년에는 수원백씨(水原白氏)가, 1820년경에는 전주최씨(全州崔氏)가 각각 마을에 들어와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자연환경]
외송마을 뒤쪽에 자리한 금정산의 주봉인 장군봉이 외송마을을 내려다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금정산을 배경으로 그 사이로 형성된 분지 가운데로 발원한 송정천(松亭川)이 다방천으로 이어진다. 다방천의 상류가 사배마을이고 하류가 내송마을이며, 그 가운데 있는 마을이 외송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약수로 알려진 용천(龍泉)이 있다. 다방천은 외송마을의 동에서 북으로 흘러 남류하는 양산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현황]
2007년 현재 총 286가구에 6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외송마을 토박이들은 주로 밭농사를 짓고, 외지 사람들은 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요 지명으로는 중머리등, 월통골, 장구밭등, 절터골, 큰골, 목골, 신선바위, 노적봉, 조밭골, 조빗등, 쇠골당, 불당골, 홈골, 장가알, 장승베기, 저자걸, 안자리, 벼리끝, 도독골, 서나무지, 서원(書院), 진들겅, 야시바위, 해장골짜기 등이 있다.
그 중 산130-6번지에 해당하는 조빗등은 옛날 수목이 울창하고 각종 조류가 많이 서식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1968년 고속국도 1번 기공식장으로서 박정희 대통령과 3부 요인 등 당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여 첫 삽을 뜬 곳이기도 하다. 조빗등에서 북쪽으로 헐왕대를 넘으면 양산으로 이어지고, 동남쪽으로 사배고개를 넘으면 동래와 이어진다. 동쪽으로 남락고개를 넘으면 철마면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범어사와 이어진다.
유적으로는 은동굴(銀銅窟)이 있고, 전설로는 「원곡산」과「돌더미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동면초등학교가 있고 시설로는 마을회관 한 동이 있다. 외송마을 앞으로 고속국도 1번과 지방도 1077호선이 나란히 통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