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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182
한자 茅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개설
문화재 영팔정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지도보기
보호수 모산리 소나무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60-2번지지도보기
보호수 모산리 느티나무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395번지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4.551㎢
가구수 181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384명(남자 196명, 여자 188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모산리(茅山里)에 관한 명칭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첫 번째로 예로부터 마을 안에 못이 있어 못안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못산으로 변하고 다시 모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의 주변에 띠[茅(모)]가 무성하여 바람이 불어오면 띠 잎이 난무하여 금물결을 이루었다.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워 띠 모(茅)와 뫼 산(山)을 합하여 모산(茅山)이라 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모산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906년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청용리(靑龍里), 송파리(松坡里), 산정리(山亭里), 천동(泉洞), 황계리(黃溪里), 구만리(九萬里), 송내, 용동(龍洞), 구암리(九岩里), 신기리(新基里), 흑석점(黑石店) 등 12개 마을을 통합해 모산리라 하였다. 백동과 용교는 폐촌되고 이목동과 통산은 이천리(梨川里)에 통합되어 현재는 산정 마을, 청룡 마을, 구암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자연 환경]

모산리 동쪽과 북쪽은 곰봉[138.0m] 등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 삼포천(三浦川)이 지나며, 그 주위로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1975년에 야산 개발 조성 단지로 지정되어 낮은 구릉을 개간하여 무, 수박을 재배했다. 1980년 무렵부터 무, 수박 대신에 배 과수원을 조성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12년 11월 기준으로 모산리의 면적은 4.551㎢이며, 동쪽은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와 경계이고, 동쪽은 월평리, 남쪽은 용산리, 북쪽은 금수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81세대, 384명(남자 196명, 여자 18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모산리 주민들 대부분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며,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가도 있다. 시설 하우스에서는 토마토, 고추 등의 채소류를 재배하고 있다.

두 개의 행정리에 다섯 개의 반이 있으며, 산정 마을, 청룡 마을, 구암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406년 건립된 영팔정(詠八亭)[전라남도 기념물 제105호]이 있다. 영암군 보호수로 수령 300년의 소나무[지정 번호 15-15-4-3]와 수령 450년의 느티나무[지정 번호 15-15-4-4]가 있다. 마을 서쪽으로 국도 13번이 지나가고, 마을 남쪽으로 군도가 형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6.02 내용 수정 [형성 및 변천]모산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모산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906년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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