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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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1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한편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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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된 후 일찍이 중부권 문화의 선진 지역이었고 의병항쟁의 고향이었던 충주에서는 다양한 갈래의 항일운동이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항일운동은 결국 국권을 회복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기에 엄정섭(嚴正燮)은 충주 출신으로 광복단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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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손석흔의 공덕을 기리는 비. 물운(勿雲) 손석흔은 동지(同志)인 김은배, 단경옥, 손승억, 윤무영, 윤주영, 이강렴, 이강호, 이희갑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북만주로 망명하여 투쟁을 계속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향리에 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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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승억의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아버지는 손석우(孫錫祐)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웃 신청리의 단경옥(段慶玉), 이희갑(李喜甲), 이강렴(李康濂) 등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등사하였다.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龍院里) 장날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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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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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1919년의 만세운동 유적비. 1919년 4월 1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을 후세에 전함과 동시에 시위 주동 인물 8명(단경옥, 이희갑, 이강렴, 손승억, 윤주영, 윤무영, 이강호, 김은배)의 공훈과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충주시에서 1984년 신니면 용원초등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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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당시 신니면의 유일한 사립학교인 용명서당(龍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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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화악리(化岳里), 추동(楸洞), 지석리(支石里)와 신단리(新丹里), 내포리(內浦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악과 지석의 첫 이름을 따서 화석리(化石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신니곡면(薪尼谷面)의 신의곡리(信義谷里)의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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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 분포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독립 유공자 당초 손승억 선생의 묘소 동북쪽 과수원 일대와 북쪽 능선을 고분군으로 보았다. 마을 뒤쪽으로 동향하는 여러 갈래의 가지 능선들이 위치한다. 능선은 좁게 가파른 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곳곳에 돌덧널무덤의 할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