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에 세워졌던 담배 수납장이 특이하게 생겨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윤우식 씨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6·25전쟁 때 불타버렸고 미군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1950년대(혹은 1960년대) 말에 재건축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인터뷰 과정에서 영단 방앗간의 창고 건물의 상량문이 남아 있어서 그...
1945년 당시 충주 인근에서 벌채한 목재를 동량면 조돈나루에 모아 뗏목을 만들어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였다. 이때 뗏목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목계마을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았고 아들인 권태희 씨의 죽마고우이기도 한 조일상 씨를 통해 권중대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군청에 근무하던 권중대(權重大)[19...
목계교를 건너 목계마을 서쪽 입구 노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들이 있다. 그러면 비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공덕을 알아보자. 첫째 목계줄다리기·별신제 유래비와 같은 영역에 세워진 박해성[1862~1923] 송덕비이다. 뒤쪽에 밀려있는 화강암 비석의 전면에 ‘박해성씨가설석교(朴海成氏架設石橋)’, 우측면에 ‘을축 11월(乙丑十一月)’...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윤해영은 파평윤씨 소정공(昭靖公)의 31세손으로 1906년 충청북도 충주군 엄정면 목계리에서 아버지 윤진국(尹鎭國)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가정에서 한문을 공부한 후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계금융조합에 근무하다가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근대적 정부 도정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였다. 성품이 과묵하고...
목계마을에서 바라보면 남한강 건너 맞은편에 솔밭이 보인다. 언뜻 보아 200~400여 년 이상 됨직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충주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소풍을 오기도 하고 물놀이 장소로도 이용되던 소위 ‘목계 솔밭’으로 알려진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412-1번지 향천마을인 이곳에는 6·25전쟁 중에 지방 공산당들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목계 서북쪽 입구 노변공원과 목계줄다리기 별신제유래비가 서 있는 곳에는 목계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공덕비에 학교 설립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서로 엇갈린 주장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윤해영 씨의 아드님이신 윤우식 씨를 윤태호 씨와 함께 찾아보기로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서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강경한 어조로 “그런 일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