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군 읍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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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법정동인 교현동은 1985년 행정동인 교현1동과 교현2동으로 분리되었다. 교현1동은 1998년 9월 30일 안림동과 통합된 행정동인 교현안림동에 속하게 되었고, 교현2동은 행정동으로 지속되고 있다. 교동(校洞)과 야현(冶峴)의 지명을 따서 동명을 교현동이라고 하였다. 본래 충주군 북변면에 속했다가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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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제리·능암리·호암리, 칠지리 일부, 연원동 일부를 병합하고 금제리와 능암리의 이름을 따서 금릉리라 하였다. 1912년 발행한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따르면 충주군 북변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충주군 읍내면을 충주면으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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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단월에는 고려 때 단월부곡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연원도찰방에 딸린 단월역(丹月驛)이 있었으므로 단월역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의 설치와 함께 단월역은 없어졌고 단월이라는 이름만 남아 법정동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단월역은 옛날 단월부곡의 땅으로 주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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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목벌동은 나무벌[木伐]·요각골[腰角谷]·진의실(眞衣室)·원터[院垈]를 합쳤을 때 목벌리라 하였고, 나무가 많은 지역이어서 나무벌, 목벌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살미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무음동(元武音洞)이 충주군 읍내면(충주면)의 종민동으로 편입되고 나무벌·요각골·진의실·원터는 합쳐서 목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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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충주군 북변면에서 충주군 읍내면으로 편입되어 목수동·행정리·미력리·지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목수동과 행정리의 머리자를 따서 목행리라 하였다. 목수(牧水)는 옛날 충주목의 북쪽 물가라는 뜻이며, 행정(杏亭)은 목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정이라고도 하였는 데, 이 은행나무는 6·25전쟁 때 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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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안림동은 안심리(安心里)·범의동(凡衣洞)·어림리(御林里)·교동(校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생겨난 마을로 그 이름도 안심리와 어림리의 지명을 따서 안림동이라 했다. 안심리는 안림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예부터 피난지로 안전한 곳이라 하여 안심이라 불리었다. 어림리는 백제 문주왕이 가행궁을 짓고 있던 솔밭이란 뜻으로 지은 마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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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시에 연원(連原)과 동수동(東守洞) 등을 병합하면서 연원과 동수동에서 한 자씩을 딴 연수리(連守里)가 연수동이 되었다. 연원은 찰방(察訪)이 있던 곳이고, 동수는 연원의 동쪽을 지키던 망대(望臺)가 있어서 동수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북변면(北邊面) 연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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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충주군 북변면에서 충주군 읍내면으로 편입되어 구동·용동·사라리·기탄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동과 기탄의 머리자를 따서 용탄리라 하였다. 용동은 옛날 용소에서 용이 등천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기탄은 용골 서북쪽에 있는 여울로 경사가 심하며, 여울 가운데에 바위가 있어 물이 두 갈래로 흐른다 하여 가리여울이라 하였으며 가리여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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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상단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남변면장 임직현의 청덕비. 임직현(林稷鉉)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1914년에 충주군 남변면과 북변면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는데, 임직현 청덕비가 1908년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1896~1908년 사이에 면장을 역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호흥학회보』 제7호의 회중 기사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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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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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민종리(民宗里)·범동(凡洞)·종당(宗堂)을 합하여 종당과 민종리의 지명을 따서 종민동이라 했다. 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부터 안림동과 연합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1998년 9월 30일 교현1동과 안림동이 통합되어 행정동인 교현안림동이 되었고, 종민동은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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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곧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곧은골 또는 직곡이라 하였는 데, 1914년 구운리(九雲里)와 발티[發峙]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하였다.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으로 동명이 나타나며, 당시에는 충원현의 남변면에 속했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에 속하였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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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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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충주군 읍내면에 있었던 금융조합. 충주 지역 농민들에게 농업자금을 제공하여 농업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9년 12월 5일 충주군 읍내면에 설립되었다. 1927년 이완재(李完載)가 조합장으로, 송하각치(松下角治)가 이사로 선출되었으나 1929년 이사가 도엽매남(稻葉梅楠)으로 교체되었다. 그 후 1933년에는 신정무부(新井武夫),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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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금대리, 신촌리, 칠지리, 능암리, 봉계동의 일부를 병합하고 칠지리와 금대리의 이름을 따서 칠금리라 하였다. 칠지(漆枝)는 옻나무 가지라는 뜻인데, 옛날에 마을 근처에 옻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대(琴臺)는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충주 탄금대의 준말이다. 칠금동은 원래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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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예전에 마을 안에 죽정사(竹精寺)라는 큰 절이 있었고, 절에 석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탑대에 속해 있는 곧은골은 본래 충주군 남변면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곧은 골짜기로 되어 있으므로 곧은골 또는 직곡(直谷)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직곡·구운리·발티·탑대 등이 통합되어 충주군 읍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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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뒷산에 모양이 마치 범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호암(虎岩)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로는 어느 선비가 이웃 마을 직동에서 내려오던 중 관음사 옆 큰 바위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호암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으로 개칭되었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