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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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이면재가 쓴 일기. 조선 말기 충주 지역(당시 청풍)에 살던 이면재(李冕宰)는 한말 의병장이자 유학자인 유인석 등과 교류하였다. 이면재는 의병을 일으킨 유인석을 뒤따라 1896년 6월부터 서울을 경유, 황해도·평안도를 거쳐 서간도로 가서 이듬해 1월 제천으로 되돌아올 때까지의 일정을 기록한 『서행일기(西行日記)』의 저자 이조승(李肇承)의 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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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충주와 개신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길목과 무관하지가 않다. 길은 곧 사람과 문물, 그 모든 것의 흐름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 충청도는 남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과천~시흥~수원~성환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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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공납제(貢納制)를 폐지하고 대신해서 제정·실시한 재정제도. 대동법은 조선 전기 조세제도 중 호역(戶役)으로 부담하였던 세납(稅納)을 토지세로 전환하는 제도이다. 즉 조선 전기 지방의 특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되던 공납제는 방납(防納)의 성행, 지주제의 확산, 공납제 부담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큰 폐단을 야기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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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용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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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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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한 언어의 방언은 별개 언어로 될 정도의 큰 분화를 일으키지 않은, 적어도 한 언어로서의 공통점을 유지하는 한도 안에서의 분화를 거친 분화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언어 안에서의 방언 분화는 지역이 다름으로써 발생하는 경우와 사회적인 요인들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전자는 지역 방언(regional dialect)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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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덕산(德山). 호는 영재(靈齋). 아버지는 참지의정부사 이조(李慥)이다. 이익박은 황희(黃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422년(세종 4)에 홍천현감(洪川縣監)을 거쳐 1427년에 충주판관이 되었다. 판부사(判府事) 변계량(卞季良)의 아내가 친정으로 가는 길에 충주를 지나는데 마을 사람 백운흥 등이 작당하여 그 종인(從人)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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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이고, 슬하에 정주신(鄭舟臣)·정매신(鄭梅臣)을 두었다. 정성근(鄭誠謹)은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하고, 1474년(성종 5)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79년 홍문관수찬겸검토관,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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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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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순조 17) 충청북도 충주 출신 채수영이 일으킨 역모 사건. 1802년(순조 2) 김조순(金祖淳)의 딸이 왕비로 책봉된 뒤 1804년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비변사를 비롯하여 조정의 권한을 장악하였다. 이로부터 안동김씨 세력의 세도 정치가 실시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뇌물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수령들은 백성들을 더욱 수탈하였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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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그리스도 교파의 하나. 충주 지역에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전래되었다. 1784~1785년 경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선조들인 이벽·정약전·정약용·이승훈·권철선 등과 함께 영세는 받지 않았지만 이가환 등이 교리를 토론하였다. 이가환이 공조판서를 거쳐 충주 목사 재직하고 있을 때 천주교 신자 사건이 있었으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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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몽항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73년(원종 14)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전개되었다. 1225년(고종 12)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뒤, 몽고는 1231년(고종 18) 조공 거절 및 저고여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고려에 대한 제1차 침입을 필두로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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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12월 충주성에서 노군과 잡류별초를 중심으로 한 충주민이 몽고군을 물리친 전투. 몽고의 지나친 조공 요구로 고려와 몽고의 화의가 깨어지자 몽고는 저고여(箸古與) 살해 사건을 핑계로 1231년 8월 고려를 침입하였다. 1231년 8월 살리타[撒禮塔]가 이끄는 몽고군은 압록강을 건너 함신진(咸新鎭)[지금의 의주]을 함락하고,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거쳐 12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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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법·행정·군사적 권한을 지닌 종2품 관직. 조선 초기에는 일반 행정과 군정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태종 이후 감사가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였다. 또한 감영 소재지의 부윤(府尹)이나 목사(牧使)의 직책까지도 겸하게 됨으로써 그 권한이 더욱 확대되어 도의 행정, 사법, 군사의 전반을 통괄하고 관할구역 내의 여러 수령을 감독하는 방대한 권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