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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722
한자 安富驛址
영어의미역 Anbu Station Site
이칭/별칭 안보역(安保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역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개설]

안부역(安富驛)『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조에 처음 기록이 나오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에 속한 14개 역 중 하나였다. 안부역에는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6필, 노(奴) 106명, 비(婢) 28명, 역리(驛吏) 25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안부역은 고려시대 단월역과 함께 광주도(廣州道) 소속의 역으로 괴주(槐州)[현 괴산]에 속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원도에 속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안보역(安保驛)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체로 안부역이라 칭하였다.

[위치]

안부역이 있던 안보리는 서울과 충청도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중요 길목이었다. 남쪽으로는 소조령조령을 넘어 문경으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수안보를 지나 충청감영이 있던 충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에 해당한다. 성현(成俔)[1439~1504]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안부역 큰길가에 온천이 있다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현재 역 터로 추정되는 곳은 소조령을 넘어온 국도 3호선한훤령을 넘어온 지방도 597번이 만나는 안보리 299~300번지와 318~320번지 일대로 알려져 있으며, 규모는 약 5,620㎡이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안부역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지표 조사를 통해 역 터와 옛길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다. 음지말 일대에서 소조령을 지나 안부역에 이르러 수안보로 가는 길의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음지말 인근의 성곤마을에 말을 관리하고 쉬게 하였던 마정(馬亭)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현황]

안부역 터에는 40여 년 전까지도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기와 건물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음지말 마을회관 한쪽에 있는 석비(石碑) 중에 ‘안부역수(安富驛守)’라는 비문이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이 안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이 있던 자리는 논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부근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은 역이 없어지면서 수회리로 옮겼다가 다시 옮겨 온 것이다.

[의의와 평가]

안부역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교통 시설로 당시 역의 규모와 배속 인원 등 역 운영과 관련된 사항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정 등 관련 시설과 옛 교통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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