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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 상라대에 있는 조선 후기 김도의가 세운 재실. 감모재는 조상을 사모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전사청(典祠廳)의 건물로, 전국의 여러 곳에 설립되어 있다. 고창군의 감모재는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세운 것이다. 김도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자는 의성(義成), 호는 여우정(如愚亭)이며, 본관은 청도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면 하라대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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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 있는 손기락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경모사는 손긍훈(孫兢訓)과 조선 후기 학자인 손기락(孫基洛)을 기리는 사당이다. 손긍훈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이다. 임진왜란 때 화산(火山)에서 왜적을 대파한 공적이 있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부사 이필달(李必達)이 충주 달천에서 전몰하는 꿈을 꾸어 이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손기락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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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는 교육 기관. 고창에서 지방도 703호선을 따라 해리면을 거쳐 상하면 방향으로 약 10㎞ 달리면 검산마을이 나온다. 계산서원은 마을 뒷산에 있다. 계산서원은 1982년에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의 공의로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사우로, 본래 1704년(숙종 30)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지대(金之岱)[1190~1266]의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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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고제택(高濟澤)의 정려. 장흥고씨(長興高氏)는 고창군의 명문가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직(高直)은 조선 태종이 벼슬을 주면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영광을 거쳐 흥덕현[현 흥덕면]의 고려곡에 은거하면서 살았다. 장흥고씨는 흥덕면과 신림면, 성내면 옥제리, 고창읍 죽림리, 동산리에 퍼져 큰 성씨를 이루고 있다. 고제택(高濟澤)은 천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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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교육 기관. 향교는 유교 문화를 기반으로 설립, 운영된 교육 기관으로서, 국가가 유교 문화 이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것이다. 향교가 적극적으로 설립된 시기는 숭유 억불과 유교 문화 이념을 정치 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시대부터이며, 유교 문화 이념을 수용해 지방 사회 질서를 유교문화 논리에 접목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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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창향교의 대성전. 고창군청 앞의 오거리에서 고창고등학교로 들어가면 그 뒤편에 고창향교가 있다.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 때 월곡리에 있던 학당사를 옮겨 와 1512년(중종 7)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1589년(선조 22) 중건하고, 그 후 순종 때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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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유교 단체.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학당동[지금의 고창읍 월곡리]에 창건하였다. 그러나 지반이 습하고 규모가 작아 1589년(선조 22) 당시 현감 이홍업(李弘業)이 지역 유생들과 협의하여 지금의 고창읍 교촌리 248-1번지[향교길 27-3]에 옮겨 지었다. 고창향교 유도회는 지역에 올바른 전통문화와 유학을 교육시킴으로 지역민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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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광산김씨 가문의 정려. 광산김씨 한 집안에서 4세에 걸쳐 다섯 사람이 효행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뒤따랐던 열행으로 나라에서 각각 정려를 내렸다. 이는 조선 시대에도 보기 드문 집안이다. 증자헌대부 예조판서(贈資憲大夫禮曹判書) 김순(金純)은 부모상에 여묘하여 새와 백호가 감응하는 효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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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황이후, 황세기, 황재중, 황윤석, 황수경을 제향하는 조선 후기 사당. 구동사는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사우로 1844년(헌종 10)에 창건하여 황이후(黃以厚), 황세기(黃世基), 황재중(黃載重), 황윤석(黃胤錫), 황수경(黃秀瓊)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황이후는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 창의한 선비로, 자는 구이(久而), 호는 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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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마명마을에 있는 오희길을 배향하는 사당. 도암(韜庵) 오희길(吳希吉)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도암(韜庵)의 자(字)는 길지(吉之)이고 오언기(吳彦麒)의 아들로 명종(明宗) 11년 고창읍 교촌리에서 출생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제자인 금강(錦江) 기효간(奇孝諫)에게 배우고 하곡(霞谷) 정운룡(鄭雲龍)과 호암(壺巖) 변성온과 더불어 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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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대동리에 있는 신한균, 김두안, 강수흠 등의 인물을 향사하는 일제 강점기 사당. 기산서원은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사우로, 1932년에 신현중(申鉉中)이 창건하고 신한균(申漢均), 김두안(金斗安), 강수흠(姜隨欽) 등을 향사해 오다가 뒤에 신명동(申命東), 신지인(申志仁), 신택렬(申宅烈), 김용수(金容洙), 신현중(申鉉中) 등을 추배(追配)하여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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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광두의 정려 비각. 김광두(金光斗)는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창문이고 모친은 밀양박씨이다. 김광두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효자 비각이 하사되었다. 후손 김한곤(金漢坤)이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고창읍에서 고수면소재지와 조산저수지를 지나 문수사로 가는 도로변에 은사리 신기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김광두 정려는 신기마을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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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 있는 개항기 광산김씨 김기두(金箕斗)의 정려. 광산김씨(光山金氏) 김기두의 부모에 대한 효성이 조정에 알려졌다. 김기두의 자는 경칠(景七)이며, 호는 장계(章溪)이다. 고창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김경희(金景熹)의 후손이다. 김기두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식이 높았다. 부친이 병에 걸리자 눈 속에서 싱싱한 채소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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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강학당. 김기서 강학당은 1548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전불사(典佛寺) 불당지라고 전하는 김기서 강학당을 세운 김기서는 광산인(光山人)으로, 자(字)는 시견(時見), 호는 돈목재(敦睦齋)로 조광조의 제자이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조광조와 신진사림(新進士林)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상평리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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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에 있는 개항기 김녕김씨 가문의 정려 비각. 김세웅(金世雄)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김경우(金景佑)를 따라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다시 창의하여 의주에서 적 10급(級)을 베고 전사함에 따라 조정은 김세웅에게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를 증직하였다. 김세웅의 처 청주한씨(淸州韓氏)는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한임여(韓霖汝)의 딸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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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에 있는 현대의 효열녀 창녕조씨 정려 비각. 창녕조씨(昌寧曺氏)는 직제학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인 조영환(曺永煥)의 딸이다. 창녕조씨는 청도김씨 김도일(金道一)에게 시집와 삼종지도를 깨달아 시부모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였고, 남편 받들기를 손님같이 했다. 나이 20세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지성으로 공궤하고 정화수를 길어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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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사형(金士衡)의 부조묘. 부조묘란 국가를 위한 공로가 큰 사람에 대하여 왕의 불천지위(不遷之位)를 허락받아 설립한 사당을 말한다. 김사형(金士衡)[1333~1407]은 고려 후기,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이다. 고조부는 김방경(金方慶)이고, 할아버지는 김영후(金永煦)이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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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흥덕현 출신의 3대 충신·효자. 김언룡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서(聖瑞), 호는 충효당(忠孝堂). 아버지는 김치진(金致進)이다. 김언룡(金彦龍)은 1562년(명종 17) 흥덕현 작천리 까치내[현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중광리]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 아버지가 죽자 상을 마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선비다운 면모를 지켰다. 선조 때 왕명을 받들어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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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으로 출가한 열녀. 선군(船軍) 주안도(朱安道)의 아내이다. 김여귀는 남편이 병들자 정성껏 약을 다려서 구원했다. 남편이 죽자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고 호곡하다가 기절하였다. 당시 친정어머니가 말리면서 임산부는 상(喪)에 임할 때 과하게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목을 매어 남편을 따랐다. 당시 나이는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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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아버지는 찬의(贊儀)를 지낸 김복중(金福重)이다. 김질(金質)은 천성이 온순하고 단정하며 효심이 지극하여 양친을 지성으로 모셨다. 어머니의 명에 따라 1528년(중종 23) 진사시에 올랐을 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1508년(중종 3) 어머니의 상을 당해 여막(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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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으로 출가한 열녀. 장사에 살던 김희상(金熙常)의 아내이다. 친정 어버이를 지성으로 모시고, 출가한 뒤에도 어버이를 사모해 마지않았다. 출가한 후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업고 친정으로 가서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어느 날 불이 나서 집이 타고 있었다. 그 집안에 어머니와 아이가 다 방안에 있었지만 신씨는 불속으로 뛰어들어 어머니를 업고, 아이는 버리고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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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맹단. 남당 회맹단은 혈맹단이라고도 하며, 채홍국(蔡弘國) 등 고창 지역 300여 명의 선비들이 구국의 기치로 호남 의병을 창의하고자 삽혈 동맹을 하고 쌓은 맹단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이 격문을 돌려 창의(倡義)하여 92명의 의사(義士)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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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 있는 김유신, 김축, 김두남, 김지남 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 사당. 남산사는 1830년(순조 30)에 창건하여 김유신(金庾信), 김축(金軸), 김두남(金斗南), 김지남(金志南) 등을 향사하고 있다.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으로 본관은 가락이며,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13세손이다. 신라 김춘추를 임금으로 추대하였고, 660년(태종무열왕 7) 상대등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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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김연, 김석원, 김기서, 김경희, 심진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노산사는 1826년(순조 26)에 고려 후기 명신인 김연(金璉)을 주벽으로, 김석원(金錫元), 김기서(金麒瑞), 김경희(金景熹), 심진(沈搢) 등 5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주벽인 김연은 광산김씨 양간공파(良簡公派) 파조로, 1215년(고종 2)에 개경 동부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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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는 현대의 서원 터. 고창에서 정읍 방면으로 국도 22호선을 따라 약 1㎞ 달리면 성두마을이 나온다. 니산서원 터는 마을에서 산 쪽으로 5m 정도 가면 보인다. 니산서원은 1977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져 제향하다가, 2004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덕양정사(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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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 있는 유창, 유한량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 덕산단은 1955년에 유창(劉敞), 유한량(劉漢良)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단(壇)을 설치하여 정덕단(鼎德壇)이라고 하였다가, 1970년에 유림의 결의에 의하여 덕산단으로 개칭하였다. 유창은 조선 전기의 개국공신으로, 본관은 강릉이고, 초명은 경(敬), 자는 맹의(孟義), 호는 선암(仙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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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도덕마을에 있는 수원백씨(水原白氏)를 기리는 사당. 수원백씨(水原白氏) 갑운(甲雲) 백인수(白麟洙), 근촌(芹村) 백관수(白寬洙),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성내면 덕산리 도덕마을 앞에 있다. 1949년에 창건(創建)했으나 경인(庚寅) 동란(動亂)으로 설향(設享)을 못하다가 1964년에 갑운(甲雲)을 봉안(奉安)하고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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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있는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등의 인물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덕천사는 1818년(순조 18)에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단종 폐위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3현만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복설하면서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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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최익현(崔益鉉),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도동사는 원래 고석진(高石鎭)이 후학을 가르치던 방호정사(方壺精舍)가 있던 곳인데, 1928년 6월에 후학들이 방호정사의 안쪽에 사우(祠宇)를 지어 최익현(崔益鉉)과 독립의군부 참모장을 지낸 고석진(高石鎭), 의병장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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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는 정희주(鄭熙周), 정민상(鄭敏相), 정유상(鄭有相),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진주정씨(晋州鄭氏) 종모재(終慕齋) 정희주(鄭熙周)와 야은(野隱) 정민상(鄭敏相), 송은(松隱) 정유상(鄭有相), 항사재(恒思齋)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도봉사는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다. 1827년(순조 27)년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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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도산서당은 인근 학동들을 위한 강당으로 쓰였으며, 도산초등학교 개교 때 교사를 구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수업을 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도산서당은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이었다. 따라서 교우 관계를 보여주는 많은 시문과 송사 기우만이 쓴 「만수당기(晩睡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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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질(金質)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도암서원는 안동김씨의 서원으로 1613년(광해군 5)에 김질(金質)의 효성과 학문을 기리어 그가 살던 집터에 창건하였다. 이후 1835년(헌종 1)에는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킨 증손 김경철(金景哲)을 배향하였으며, 1857년에는 김경철의 아우로 임진왜란 때에 왕을 호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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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동산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서원의 터. 고창군에서 정읍 방면으로 국도 22호선을 따라 23㎞ 달리면 동산마을이 왼쪽에 있다. 마을에 동산서원 터만이 있다. 동산서원은 이필(李苾)[1682~1746]이 1718년(숙종 44)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1633~168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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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서원. 만화서원은 제주고씨 고인상(高麟相)이 선조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을 주벽으로, 문영공(文英公) 고용현(高用賢)과 화당(化堂) 고만욱(高萬郁)을 추배하고 있다. 고경과 고용현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다. 고만욱은 고인상의 부친으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예를 극진히 하였다. 고창군에서 정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5㎞ 정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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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남당마을에 있는채홍국(蔡弘國), 고덕붕(高德鵬), 한계상(韓繼常), 채명달(蔡命達), 채경달(蔡慶達)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평강채씨(平康蔡氏) 야수(野叟) 채홍국(蔡弘國), 장흥고씨(長興高氏)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 청주한씨(淸州韓氏) 사복시정(司僕寺正) 한계상(韓繼常), 야수(野叟)의 장자(長子)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채명달(蔡命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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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낙양리에 있는 개항기 무송유씨 가문의 정려각. 무송유씨(茂松庾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표가 내려져, 합동으로 무송유씨 삼강문을 건립하였다. 충신인 유영룡(庾泳龍)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이끌고 근왕(勤王)하다가 청주에 이르러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왔다. 유영룡이 죽은 후에 조정은 통훈대부 사헌부감찰(贈通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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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기본적으로 봉사와 교육의 기능이 있다. 따라서 향교는 사당에 해당하는 대성전과 동·서무,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 72인, 우리나라의 명현 18인의 위패가 있으며, 정기적으로 제사를 올리도록 되어 있어 선현 봉사의 사당 역할을 한다. 고창군에서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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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유교 단체. 무장향교는 1420년(세종 2) 지금의 자리인 무장면 교흥리 109-1번지[교흥교촌길 9]에 창건되었다. 1600년(선조 33)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의 내외 3문을 지금의 자리에 중건하였고, 1840년(헌종 6) 명륜당이 불에 타 1842년(헌종 8) 봄에 중건하였으며, 1852년(철종 3) 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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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무장향교 대성전. 조선 왕조는 개창 후 일읍 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수령이 파견된 지역에 교육기관인 향교를 설립하였다. 각 고을에 설치된 향교는 교육의 기능과 함께 성현인 공자를 배향하고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또한 무장향교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는 곳이다. 무장향교는 고창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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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개항기 밀양박씨 가문의 효열각. 학생(學生) 박기순(朴基純)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 널리 알려졌다. 조정은 박기순에게 효자 정려를 하사하였다. 또한 박기순의 손자 박동석의 처 수원백씨는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수원백씨는 남편이 병에 걸려 앓아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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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행원(行源), 호는 모재(慕齋).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박세영(朴世榮)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박유정(朴由精)이다. 박효형(朴孝亨)은 6세에 아버지 박유정이 임진왜란 때 달천 싸움에서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큰 소리로 울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 3년간 추복(追服)[상(喪)을 당하였으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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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김두남·김지남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백양사는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된 승지(承旨) 청계(淸溪) 김두남(金斗南), 월재(月齋) 김지남(金志南)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김축은 김극일의 현손(玄孫)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아들 김기경(金起庚)과 아우 김헌(金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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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에 있는 유탁(柳濯)을 비롯하여 서홍도(徐弘渡), 유운(柳澐), 안정(安貞), 서일남(徐馹男), 유경원(柳慶元), 유동인(柳東仁), 유철견(柳鐵堅), 안진(安晉), 유여회(柳汝檜), 유지태(柳之泰) 등을 배향하는 일제 강점기 사당. 벽산사(碧山祠)에는 유탁(柳濯)을 비롯하여 서홍도(徐弘渡), 유운(柳澐), 안정(安貞), 서일남(徐馹男), 유경원(柳慶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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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에 있는 김안절(金安節)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사산사는 선조 때 선비 사헌(沙軒) 김안절(金安節)을 모시는 사당으로, 1913년에 창건되었다. 김안절의 자는 의신(義臣), 호는 사헌이고, 본관은 상산(商山)으로 1514년(중종 9)에 출생하였다. 28세에 양성현감(陽城縣監)이 되었고, 2년 후에 중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고부승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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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에 있는 성사달(成士達), 성부(成溥), 성여원(成汝源), 성무조(成武祚), 성경수(成卿修)를 배향하는 일제 강점기 사당. 송양사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사우(祠宇)로, 성사달(成士達)을 주벽으로 하여, 성부(成溥), 성여원(成汝源), 성무조(成武祚), 성경수(成卿修)를 배향하고 있다. 성사달[?~1380]은 고려 공민왕 때의 공신으로, 본관은 창녕(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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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고창 지역의 대표적인 서당으로는 고창읍 주곡리의 판경당(瓣敬堂)과 상하면 검산리의 스무재서당, 고수면의 김기서 강학당(金麒瑞講學堂), 흥덕면 흥덕리의 관서당(觀書堂), 그리고 고창읍의 도산서당이 있다. 유학자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상하면 검산리에 그의 5대조의 사당인 감모재(感慕齋)를 세우고, 그곳에 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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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에 있는 강지연(康之淵), 강유(康旒), 강흔(康訢), 강기종(康起宗), 강귀중(康貴中), 강지수(康智水)를 향사하는 사당. 신산사는 신천강씨(信川康氏)의 사우로, 강지연(康之淵), 강유(康旒), 강흔(康訢), 강기종(康起宗), 강귀중(康貴中), 강지수(康智水)를 향사하기 위하여 1978년에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지연은 고려 고종 때의 공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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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황국재(篁菊齋). 호조좌랑을 지낸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安建)은 부모가 병이 나자, 자신을 비롯해 세 동생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부모에게 먹여 생명을 연장케 하였는데,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 집안에 효자가 넷이나 났다[一門四孝]는 칭찬이 자자하였다. 상(喪)을 당하자 예법에 따라 하고, 초하루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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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김해김씨 김극일의 직계 근친 25명의 의사와 다섯 명의 열부를 기리는 조선 후기 정려각. 어사각은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의 7년간의 전투에서 전사한 김해김씨 삼현파 한림공 용(勇)의 후손들과 그 비보를 받고 자결한 부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이들은 김해김씨[일명 삼현파] 의 후예로 김해김씨 단도판서공파, 일명 삼현파의 절효공 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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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수앙리에 있는 개항기 연안이씨 가문의 정려. 연안이씨 이우락(李遇洛)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자라 부모 봉양을 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소급해서 3년 상기를 치렀다. 여막에서 정성을 들여 시묘하면서 통곡하는 정성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선산에 벌레가 생기자 까마귀나 까치가 와서 쪼아 호위하여 주었다고 전한다. 이우락은 계모를 친어머니와 같이 모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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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들을 일반적으로 열녀라 부른다. 열녀는 고대에도 보이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등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 때의 설씨녀(薛氏女) 이야기, 백제 개루왕 때의 도미(都彌) 처 이야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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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고성리 사미마을에 있는 김해김씨 사당. 고성리 사미마을 염수재는 사미마을 서쪽 산정에 위치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마을 경로회관을 지나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경사가 조금 급한 편이지만 자동차로 갈 수 있도록 시멘트 도로포장을 해두었다. 세워진 날짜는 확실하진 않지만 2010년 기준으로 약 50년 전인 1960년대에 세워졌다. 정면 4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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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오룡마을에 있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사당. 하장리 오룡마을 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중앙 김인수(金璘洙) 가에 남향을 한 기와집 1칸이 있었는데, 건평 19.8㎥ 정도 되었다. 그러다 건물이 낡아 1998년에 새로 부지를 마련하여 사당을 다시 지었다. 오룡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풍판이 있고 기와를 얹었다. 앞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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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명철(吳命喆) 처 삭녕최씨(朔寧崔氏)의 정려. 오명철(吳命喆)의 처 삭녕최씨(朔寧崔氏)는 덕행이 정숙하였다. 회임하여 만삭일 때 남편이 죽자 자진하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만류하여 한 달이 지나 해산하고 곡기를 끊은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예조에서 정려의 명을 내렸다. 고창군 아산면에서 무장면으로 가는 지방도 15호선을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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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이화 처 완산이씨의 정려. 오이화(吳以和)의 처 완산이씨는 이운령(李雲翎)의 딸로서 1614년(광해군 6)에 출생하였다. 남편 상을 당해 두 번이나 죽으려고 했으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소생하였다. 노모와 어린아이를 위해서 억지로 일어나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복을 벗은 뒤 친정아버지가 의지할 곳 없는 딸을 데려갔는데,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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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감천(感泉). 한림원승지를 역임한 오자귀(吳自貴)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오팽년(吳彭年)이다. 오준(吳浚)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예절을 숭상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8세 때인 1471년(성종 2)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4일을 연명케 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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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흥고씨 문중의 사당. 옥제사(玉堤祠)는 장흥고씨 문중의 사당으로, 임진왜란 당시 채홍국(蔡弘國) 등과 창의한 고덕붕(高德鵬)[1552~1626]과 고여흥(高汝興)[1617~1678], 고제만(高濟萬)[1860~1942] 등을 모시고 있다. 고덕붕은 임진왜란 때 채홍국 등과 함께 남당고개에 모여 단을 쌓고 창의한 인물이다. 고여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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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 있는 김시흥(金時興), 김문기(金文起), 김현석(金玄錫), 김영년(金永年)을 기리기는 사당. 왕산사는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사우로 김시흥(金時興), 김문기(金文起), 김현석(金玄錫), 김영년(金永年)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시흥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송악(松岳), 시호는 문열(文烈)이며, 김녕김씨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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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를 기리는 조선시대 사당. 고흥유씨(高興柳氏)의 사우로서, 일평(一萍) 유필원(柳必源)[1625~1684],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1632~1695], 삼애(三涯) 유덕휴(柳德庥)[1667~1739], 수한(睡漢) 유세기(柳世箕)[1768~1821] 네 효자를 모시고 있다. 일평과 허제 형제는 효가 지극하고 우개가 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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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 있는 기삼연(奇參衍)과 정관원(鄭官源) 등을 기리는 개항기 사당. 고창군에서 무장면으로 지방도 989호선을 따라 15㎞ 정도 달리면 무장에 도착하는데, 다시 덕림으로 4㎞ 정도 달리면 덕림마을이 나온다. 또는 고창에서 고수와 학천을 거쳐 12㎞ 정도 달리면 덕림마을이 나온다. 용오정사는 마을에 있다. 용오정사는 1885년(고종 22) 지방 유림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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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곡서원은 지방 유림들이 중국의 회암(晦庵) 주희(朱熹)[1130~1200], 백암(白巖) 김제(金濟)[1362~?], 농암(籠巖) 김주(金澍)[1365~?],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1389~1456],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학문과 덕행, 그리고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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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세워진 현대의 서원. 월암서원은 1946년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 전기에 활약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1497~1579], 송은(松隱) 임신번(林信蕃)[1494~1567]의 사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창건하였다. 고창군에서 북일면 방면으로 지방도 898호선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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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으로 출가한 열녀. 고창의 사인(士人) 유경복(柳慶復)이 남편이다. 유경복(柳慶福)의 처(妻) 울산김씨는 고창으로 시집을 온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병에 걸려서 죽었다. 상을 당하여 극진히 상례(喪禮)를 다하느라 몸이 상하여 병들었고, 이어 자결하였다. 1786년(정조 10) 정려가 되었다. 유경복 처 울산김씨 정려각이 고창읍 성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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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경복(柳慶福)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정려각. 1786년(정조 10) 고흥유씨인 유경복(柳慶福)의 처 울산김씨(蔚山金氏)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열행으로 정려되었다. 울산김씨는 어려서 부친을 여읜 뒤 편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행하였고 형제간에 우애도 돈독하였다.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이 큰 병에 걸리자 주야로 시탕(侍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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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孔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공자 및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삼국 시대 고창 지역의 유교에 대해서는 올바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만 백제가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와 문화를 구축하고 의례를 거행했다는 측면에서 고창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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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양수(陽叟), 호는 수한(睡漢).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상현(柳象賢)이다. 유세기(柳世箕)는 가학(家學)으로 한문을 익히고, 성장하자 서당에 나가 경전과 사서(四書)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시문(詩文)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효행의 가풍을 계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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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백(源伯), 호는 일평(一萍). 장사랑(將仕郞) 유봉(柳鳳)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다. 유필원(柳必源)은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글을 배운 뒤 전라북도 논산 출신의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소학(小學)』과 『효경(孝經)』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여 독실한 효심으로 39세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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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유학(儒學)의 성립과 발전에 힘쓴 사람들. 우리나라에 유학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삼국 시대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경전은 1992년 평양 정백동 364호분에서 발견된 죽간에 기록된 『논어(論語)』이다. 이것은 B.C. 4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학이 고창 지역에 언제부터 들어와서 퍼지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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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 열녀. 이근채 처 흥성장씨는 동학 농민 혁명에 남편이 연루되었다는 명목으로 시아버지가 경군(京軍)에 잡혀가 곤욕을 치르자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시아버지의 석방을 청탁하여 경군의 허락을 받아 냈다. 시아버지가 노환으로 쓰러지자 10여 년 간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1904년(광무 8)에 정려가 내려졌다. 흥성장씨 정려는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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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이만기(李晩器)는 좌랑(佐郞)을 지낸 이만중(李晩重)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환부(患部)를 혀로 핥았으며, 아버지가 죽자 3년상을 마칠 때까지 죽으로 연명했다. 형제가 우애하여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계(契)를 조직하여 인근 마을의 상(喪)에는 온 정성을 다해 돕고, 곡식을 모아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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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무경(茂卿), 호는 월촌(月村). 죽곡(竹谷) 이장영(李長榮)의 현손이다. 이익방(李益芳)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피 울면서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시묘하였다.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어머니가 나타나 약 세 알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아들 셋을 둘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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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에 있는 개항기 이지영(李祉榮)의 정려. 증 통훈대부 사정부감찰(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 이지영(李祉榮)의 효행이 알려져 1884년(고종 21) 8월에 왕이 정려를 내렸다. 정려기(旌閭記)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1915년 8월에 족손인 전 참판 이종필(李鍾弼)이 썼고, 다른 하나는 1916년에 기우만(奇宇萬)이 썼다. 이지영 정려는 대문과 흙담장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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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를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인산사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우로서, 숙종 때에 예산(禮山) 대흥(大興)의 이약수(李若水) 묘 아래에 사우를 세우고 춘추향사(春秋享祀)를 하였는데,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0년에 자손이 세거하는 이곳에 규모를 갖추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약수(李若水)의 자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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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하장마을에 있는 김안절의 위패를 모신 개항기 사당.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하장마을은 상산김씨(商山金氏) 집성촌으로 현재 19가구가 살고 있으며 인근 면소재지 등지에 거주하는 수를 합하면 50여 호에 달한다. 하장마을에는 제각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하장리 하장마을 장사재(長砂齋)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6일에 상산김씨 후손들이 시제를 지낸다. 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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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에 있는 김기성을 기리는 영당. 김기성은 현대 지사로, 호는 은암(隱巖),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석원(金錫元)의 후예 김상학(金相學)의 아들이다. 무장(茂長)의 주부(主簿) 여의(麗義)의 후예이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안빈호학(安貧好學)하여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던 성리학자 김수익(金秀益)과 고석진(高石鎭)을 스승으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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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에 있는 김문기(金文起), 김영년(金永年), 김헌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단비. 장절단은 원래 단종 때의 절신(節臣)인 김문기(金文起)와 임진왜란 때 창의한 김영년(金永年) 및 김헌을 기리기 위하여 1942년에 세운 사당이었는데, 지금은 사당 건물은 사라지고 단비만이 남아 있다. 김문기는 조선 세조 때에 순절(殉節)한 문신으로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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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학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주최씨 가문의 충효열 삼강문. 최선준(崔善峻)은 벼슬이 도사(都事)였다. 최선준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큰 공을 세우고 웅치(熊峙)에서 순국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최선준의 9세손 최백원(崔伯源)의 처 상주주씨(尙州周氏)는 주도선(周道先)의 딸로서, 남편이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찢어 피를 흘려 남편의 입에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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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충신, 효자, 열녀에게 나라에서 정표하여 세운 집. 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부른다. 건물이 아닌 문을 세우게 되면 정려문이고, 건물을 세우게 되면 정려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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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서(曺庶), 조의기(曺義起),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 사당. 정산사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사우(祠宇)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조서(曺庶)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의기(曺義起), 조선 후기의 효자 조언징(曺彦徵)을 향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서의 자는 여중(汝衆), 호는 청간(淸澗)이고, 본관은 창녕으로 경기도 부천군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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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종모재(終慕齋). 절제사를 지낸 정종순(鄭宗舜)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정기현(鄭期顯)이다. 정희주(鄭熙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지성으로 모시어 뜻을 받들어 봉양을 다하였다. 부모의 병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어 대신하기를 원했으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하여 아버지는 16년을, 어머니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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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유창, 유한량, 길사순(吉師舜)을 기리는 사당. 유창은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이다. 강릉유씨(江陵劉氏)의 시조로, 자는 맹의(孟義), 호는 선암(仙庵)이고, 강릉부 우계현(羽溪縣)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군사(知郡事) 천봉(天鳳)이다.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학유(成均學諭)가 되었고, 전공좌랑(典工佐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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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에 있는 개항기 조양임씨 가문의 정려. 판서 임난봉(林鸞鳳)의 증손 서천군수 임사복(林士福)이 서울에서 고창으로 남하함에 따라 조양임씨(兆陽林氏) 자손들이 외정(外鼎)에 세거하고 있다. 조양임씨 정려는 증감찰(贈監察) 임기양(林岐陽)의 처 증숙인(贈淑人) 창원김씨(昌原金氏)의 열(烈)과 그 아들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임영필(林永弼)의 효를 기리는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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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휴백(休伯), 호는 삼오당(三吾堂). 청간(淸澗)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한빈(曺漢賓)이다. 조언징(曺彦徵)은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당대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그의 시에 “상쾌한 숲과 샘[林泉]은 내게 가장 마땅하고 경서의 뜻풀이[經訓]와 농사 이야기[農談]는 내 분수에 마땅하네. 이 속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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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응두의 처 문화유씨의 정려. 직산 조응두(趙應斗)의 처 문화유씨는 사용(司勇) 유대기(柳大器)의 딸이다. 정유재란에 부부가 함께 산곡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왜적에 쫓겨 달아나자 문화유씨가 그 뒤를 따르다가 왜적에게 붙잡혔다. 왜적이 문화유씨를 겁탈하려 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끝내 절사(節死)하였다. 조정은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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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죽산마을에 있는 오익창(吳益昌), 오전(吳晪) 부자(父子), 오병수(吳秉壽)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아산면 성산리 죽산(竹山)에 있는 함양오씨(咸陽吳氏)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 절암(節菴) 오전(吳晪) 부자(父子)와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죽산사는 아산면 성산리 죽산마을로 들어가는 언덕에 있다. 171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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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개항기 죽산안씨 가문의 효자 정려. 안건(安建)은 호조좌랑(戶曹佐郞) 안복(安福)의 7세손이다. 안건은 부친이 위독하자 동생 안정(安廷), 안형(安逈), 안근(安近)과 함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아버지를 살려내자 세상이 그들을 일문사효(一門四孝)라 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다하고 삭망마다 성묘하자 전라감사 박기수(朴綺壽)가 쌀,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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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진주정씨 가문의 정문. 진주정씨(晉州鄭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누대에 걸쳐 정려를 하사받았다. 진주정씨 삼강각에는 하나의 비석과 열세 개의 현판이 있어 이들의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흘(鄭屹)은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의진에 임했으나, 전라감사가 무장현[현 무장면]에 현감 자리가 공석이자 현감 직책을 맡아 성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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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동복오씨 문중의 사당. 창효사(彰孝祠)는 성종 때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감천 오준(吳浚)[1444~1494]과 오시정(吳詩挺)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오준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그의 효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오준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시묘살이 하던 자리 옆에 갑자기 벼락을 쳐서 청수(淸水)가 솟으니 이를 효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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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 있는 배을서(裵乙瑞),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한 일제 강점기 사우.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를 주벽으로, 송간(松澗)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했다. 배을서는 총명하고 재기가 비범하여 길재(吉再)에게서 수학하였고, 그의 사위가 되었다. 또한 정몽주와 이색 문하에서 수학하여 척불흥학(斥佛興學)을 사명으로 삼았고, 부모 장례를 마치고는 3년여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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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오월(梧月). 아버지는 만오(晩悟) 최후경(崔候慶)이다. 최봉의(崔鳳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평소 아버지의 효행을 본받아 그대로 실천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고기를 잡고 땔감을 채취하며 극진하게 공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한 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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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와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성리학을 근본 학문으로 채택한 조선은 충효를 가르쳐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신하와 백성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 전에 먼저 부모에 대한 효를 가르쳤는데, 효 사상이 외연을 넓히면 그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귀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매년 방백과 수령에게 지시하여 효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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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절사는 고려의 충신인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우이다. 장연우는 고려 현종 때의 대신으로,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흥성(興城)이며, 장유(張儒)의 아들로 영매(英邁)한 천품(天品)에 지략이 있고, 문학 또한 대성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 문과에 합격해 여러 요직을 거쳤다. 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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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에 있는 이존오(李存吾), 류희춘(柳希春), 손홍립(孫弘立)을 기리는 사당.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 미암(眉巖) 류희춘(柳希春), 경암(警菴) 손홍립(孫弘立)을 모신 사우(祠宇)이다. 충현사는 무장면 교흥리 무장향교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에 있다. 1589년(선조 22)에 창건되었다가 정유재란에 화를 입고 1608년(선조 41)에 중건하였다.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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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사반리에 있는 개항기 함양박씨 가문 삼강려. 박세영(朴世榮)의 증손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 박유정(朴由精)은 임진왜란에 순절하여 충(忠)으로, 통정대부병조참의(通政大夫兵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박유정의 아들 박효형(朴孝亨)은 부모에게 극진한 효를 다해 효(孝)로 조봉대부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박효형의 9세손 박동일(朴東鎰)의 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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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 있는 유영선(柳永善)이 건립한 일제 강점기 정사. 현곡정사는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1893~1961]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곡정사가 건립되기 이전, 유영선의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이곳에서 1년 정도 강학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유영선이 스승을 계승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24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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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 있는 서원. 근현대의 유학자 전우(田愚)[1841~1922]를 주벽으로 하며, 1970년 전우의 문하에 나아가 19년 동안 수학한 유영선(柳永善)[1893~1961]을 추배하였다. 유영선이 1924년에 건축한 4칸의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기반으로 1955년 유림이 창건하였고, 그 다음해 용암사(龍巖祠)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강서원 내에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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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서원. 화동서원은 고창군에서 영광 방면으로 지방도 893호선을 따라 20㎞ 정도 가면 대산면이 나오는데, 마을 안쪽에 있다. 화동서원은 1958년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친에서 세운 서원으로, 본래 광산김씨의 사우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1796년(정조 20) 시조인 신라왕자 흥광(興光)의 유허(遺墟)인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현 광주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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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화순오씨의 부조묘. 오사충(吳思忠)[1327~1406]은 고려 후기,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 중 한 사람이다. 초명은 오사정(吳思正)이며, 호는 수암(守菴)이다. 1355년(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 헌납, 집의를 거쳐 1389년(창왕 1) 좌사의대부가 되었다. 이 해에 공양왕이 즉위하자 조박(趙璞)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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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 출신이거나 고창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이(李珥)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사친(事親)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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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화와 유교적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한 명이 정원 서른 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향교 내의 건물로는 사당에 해당하는 대성전과 동재(東齋)·서재(西齋),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이 있다. 대성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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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유교 단체. 흥덕향교는 1407년(태종 7) 흥덕현 남일리 목화정[지금의 흥덕면 흥덕리 목화정] 부근에 창건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자 위패와 영정을 선운사 도솔암에 모셨고, 1621년(광해 13)에 지금의 위치인 흥덕면 교운리 206번지[흥덕향교길 28-12]에 이건하여 위패와 영정을 대성전(大成殿)에 봉안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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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흥덕향교 대성전. 흥덕향교는 1621년(광해군 13)에 창건되었고, 흥덕현[현 흥덕면] 유림들의 숙원 사업으로서 1675년(숙종 1) 어명에 의해 중창되었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유교 문화 속에서 운영된 교육 기관으로, 국가가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켜 지방에 세웠다. 흥덕향교 대성전은 자연석 바른층쌓기를 기초로 장대석의 기단을 두었고, 그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