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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서 화투를 소재로 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화투 타령」은 화투에 그려진 그림을 월별에 따라 해학적으로 풀이한 달거리식[月令體] 도구 유희요이다. 노랫말이 화투 패에 그려진 동물이나 꽃 등을 소재로 읊으면서 언어 유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실려 있다. 이는 박순호가 1990년 전라북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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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90세를 넘어 장수하고 있는 주민들이 많다. 김기영 씨는 올해[2009년] 96세로 그 중에서도 최고령자다. 그런데도 불편한 곳이 없을 정도로 정정하다. 장수하는 비결에 대해 묻자 별다른 말씀 없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김기영 씨의 친정은 정읍시 소성면 기린리 매꼬지마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기영 씨를 ‘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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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임 씨의 친정은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순임 씨를 ‘송산댁’이라고 부른다. 조순임 씨는 열여덟 살이었던 1940년에 이곳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 사는 스무 살의 유내옥 씨와 혼인을 했다. 혼례를 올리고 난 뒤 1년을 친정에서 묵힌 뒤[예전에는 신랑ㆍ신부가 혼례를 올리고 난 뒤 바로 시댁으로 가지 않고 신부가 친정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간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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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평리는 고려 때 갑향(甲鄕)이 있어 갑향이라 하다가 ‘가평(加平)’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평리(加平里)·백계동(白溪洞)·갈촌(葛村)·노동(蘆洞)과 이남면(二南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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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당산. 천룡신은 마을 수호신이다. 천룡은 하늘의 용신을 의미하는데, 고창 지역에서는 마을 주산에 천룡당이 위치한다. 정월 열나흗날에 가평리 가평마을 천룡당산에서 천룡제를 지내 천룡을 강신시킨다. 가평리 가평마을 천룡당산은 마을 뒤쪽 평지에 위치하고,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제단석은 천룡제를 위한 단석이다. 고창 지역에서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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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고색창연마을에 있는 당산 선돌. 가평리 당산선돌은 2기가 있는데, 1기는 당산나무 아래에 위치한 당산 신체로서 선돌과 제단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1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한 뒤에 용줄을 감는 당산 선돌이다. 고색창연마을 입구 마을 앞면에 있다. 가평리 당산선돌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자연 선돌이다. 가평리의 선돌은 2기가 있는데, 1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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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규 씨는 현재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그가 마을 이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처음 마을 일을 맡았을 때[1958년 2월]는 불과 열아홉 살의 풋내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장 직을 내놓고 지금까지 학교 일과 향교 일만 거들며 살아온 그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올해[2009년, 2008년 12월 선출] 다시 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장이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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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몸이 튼튼한 어린이, 이웃을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4월 1일 신림국민학교 가평분교장으로 인가받았으며, 1958년 4월 가평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개교하였다. 1983년 신림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인가받았고,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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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상인 및 일반 행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설치된 것이다. 역과 함께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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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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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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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한가로운 3월 중순, 담쟁이넝쿨로 보아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옛 돌담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게 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어느 집 돌담 너머에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복사꽃이 함초롬히 피었고, 그 옆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시샘하듯 이른 봄 자태를 뽐낸다. 몇 발짝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당이 몹시 넓어 보이는 어느 집, 활짝 열려 있는 대문간 옆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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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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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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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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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희제(希齊), 이명(異名)은 자성(子聖)이다. 1875년 12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554번지[가평1길 51-3]에서 태어났다. 고제천은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숙부인 고석진(高石鎭)을 쫓아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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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은 2007년 농업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이 오래도록 간직한 전통 문화를 다시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합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전통 문화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삶에 대한 가치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새롭게 인식하면서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외부인들과 더불어서 함께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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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 있는 아스콘 제조 및 건설업체. (주)금천건설은 직원의 복지 증진과 회사의 이익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2001년 7월 설립하여 2003년 6월 5일 플랜트 준공[250t/hr]을 완료하였고, 6월 7일 공장 등록을 하였으며, 10월 15일 법인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주요 업무는 아스콘 제조이며, 전문 건설 철근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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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유독 비석이 많다. 마을 안에는 물론이고 마을 입구와 논과 논 사이에도 비석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효부비와 열녀비가 많은 것을 보면 가평마을의 역사와 풍속을 짐작하게 한다. ‘나문김효부기실비(羅門金孝婦紀實碑)’도 그 많은 비석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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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마을 주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모두가 바쁜 1년 열두 달을 보내고 있다. 물론 한겨울에는 대부분 농사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지만, 간혹 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기계의 힘을 빌려서 농사를 보다 쉽게 경작할 수 있게 되면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겨울에도 땅을 일군다. 여느 마을처럼 가평마을도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예전보다는 농사짓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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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은 지금도 매년 정월이면 당산제를 성대하게 모신다. 당산제를 모시기 위해서는 제관과 화주[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람] 선정부터 제물 장만에 이르기까지 깐깐하게 살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당산제를 모실 때 제일 까다로운 것이 바로 제물 장만이다. 제물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정성껏 대접해야 당산신이 마을을 잘 보살펴주고 해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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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의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는 인근에서도 유명한데, 그래서도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촌제를 모시고 줄다리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오늘날까지 가평마을 사람들이 촌제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것은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촌제를 모시기 때문에 마을이 사고 없이 화평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다고 믿는다.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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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덕화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덕곡리(德谷里)와 화동(化洞)에서 ‘덕(德)’자와 ‘화(化)’자를 따 ‘덕화(德化)’가 되었다. 1600년경 임진왜란 시 피난온 진주강씨(晋州姜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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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하는 수많은 옛이야기 가운데 도깨비 이야기만큼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전하는 도깨비의 형체는 다양하다. 달걀도깨비, 홑이불도깨비, 등불도깨비, 멍석도깨비, 더벅머리도깨비, 강아지도깨비, 차일도깨비 등 헤아릴 수 없는 도깨비들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 형태로 전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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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최익현(崔益鉉),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도동사는 원래 고석진(高石鎭)이 후학을 가르치던 방호정사(方壺精舍)가 있던 곳인데, 1928년 6월에 후학들이 방호정사의 안쪽에 사우(祠宇)를 지어 최익현(崔益鉉)과 독립의군부 참모장을 지낸 고석진(高石鎭), 의병장 고예진(高禮鎭), 고용진(高龍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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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림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산리(道山里)와 왕림리(旺林里)에서 ‘도(道)’자와 ‘임(林)’자를 따 ‘도림(道林)’이 되었다. 1302년(충렬왕 28) 성적골에 마을이 들어섰다가, 1500년경에 현재의 위치에 여러 성씨가 모여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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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북서쪽에 있었다는 만정은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일대에 있는 무덤만이 옛이야기를 전하듯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만정은 고시철 선생의 호를 딴 것으로, 선생이 만년에 지어 친지 문인들과 독서하고 음풍농월했던 정자라고 한다. 지은 연대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 철종 말엽인 186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1882년 큰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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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마을 공동으로 ‘촌제’를 모시고 있다. 언제부터 촌제를 모시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시고 있다. 촌제는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두 군데에서 모신다. 촌제는 먼저 마을 뒤편 논 가운데에 서 있는 팽나무 앞에서 모시는데, 이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철륭할아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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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서원. 만화서원은 제주고씨 고인상(高麟相)이 선조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을 주벽으로, 문영공(文英公) 고용현(高用賢)과 화당(化堂) 고만욱(高萬郁)을 추배하고 있다. 고경과 고용현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다. 고만욱은 고인상의 부친으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예를 극진히 하였다. 고창군에서 정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5㎞ 정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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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사(道東祠) 는 가평리 가평마을을 대표하는 문화 유적이다. 도동사 외삼문 안에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방호정사가 위치하며, 그 뒤에 다시 외삼문이 있고, 그 뒤편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사당[도동사]이 배치되어 있다. 도동사는 1920년대 초반 고순진(高舜鎭)ㆍ고예진(高禮鎭) 형제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전국의 유림들이 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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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부녀자가 중심이 되어 모시는 신앙을 가정 신앙이라 한다. 그 가운데 오늘날에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신앙은 성주와 지앙으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서는 아직도 일부 부녀자들이 성주와 지앙을 모시고 있다. 성주는 집을 지켜 주는 신으로, 옛 사람들은 집이 있으면 으레 성주가 있다고 믿었다. 가평리 가평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성주를 모신다고 하는데, 단지나 동우[동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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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림리는 행정구역 개편 시 중심 마을인 임리(林里)의 이름에서 ‘숲말’이라고 하여 무림리(茂林里)가 되었다. 1700년대 초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치중(尹致中) 등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임리·만화리(萬化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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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솟대. 일반적으로 짐대를 솟대라고 부르는데, 마을 현지에서 주민들은 솟대를 솟대라고 부르지 않고, 짐대, 오리짐대, 진대 등으로 부른다. 짐대는 대체로 마을 입구에 세워지는데, 긴 장대 위에 오리를 한 마리, 또는 세 마리를 올려 장식해 놓는 게 일반적이다. 짐대는 대체로 화재막이 짐대가 많고, 동시에 짐대라는 용어에는 풍수지리적으로 압승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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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임리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당산. 임리마을에는 앞당산과 뒷당산이 있다. 앞당산은 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할미 할애비당이라 불리는 돌 당산이다. 뒷당산은 마을 뒤쪽에 있는 천룡 당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천룡 당산은 천룡이 내려와 정주하는 곳을 의미하고, 천룡은 하늘의 용이라는 영물을 뜻한다. 고창 지역 농민들은 농사철을 앞두고 당산제를 지낼 때 하늘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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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임리마을에 있는 당산. 임리마을 앞쪽에는 ‘할미할애비당’이라 불리는 돌 당산이 있고, 마을 뒤쪽에는 천룡 당산나무가 있어,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무사 안녕을 비는 앞당산제와 천룡제(天龍祭)를 지낸다. 임리마을은 고창읍에서 신림 방면으로 가는 길에 있다. 마을의 앞쪽에 입석이 있는데, 이를 ‘할미할애비당’이라고 부르며,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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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반룡리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상반룡[上龍溪]과 하반룡[下龍田]에서 이름을 따 반룡리(盤龍里)라고 하였다. 또, 옛 마을 뒷산인 방장산에서 용(龍)이 승천하다 떨어졌다는 유래가 있어 용바위로 부르다가 ‘반룡(盤龍)’이라고 불렸다 한다. 1700년대 초계변씨(草溪卞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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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반룡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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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남쪽 중턱에 있는 굴. 방장동굴과 관련된 노래인 「방등산가(方等山歌)」가 『고려사』 권 71에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그 제목과 유래만 전하고 있다. 「방등산가」는 신라 말기에 장일현(長日縣)의 한 여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온다. 신라 말년에 온 세상이 어지러워 도둑들이 고창 방등산(方等山)의 방장동굴에 본거지를 두고 고창 지역의 풍요로운 들녘에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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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34m인 방장산(方丈山)은 고창군의 진산으로 정읍 고부의 두승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전라북도의 삼신산이라고도 하며, 지리산ㆍ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고 불린다. 방장산은 고창군 신림면, 정읍시 입암면,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방향이 동쪽을 향해 있다. 방장산은 내장산의 서쪽 줄기를 따라 뻗은 능선 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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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방장산에서 매년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 방장산해맞이축제는 고창방장산악회의 회원들이 하던 방장산 해맞이 행사를 군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군민 행사로 기획하여 2005년 1월 1일 처음 개최하였다. 이후 매년 1월 1일 군민 및 관광객들이 고창의 대표적 산인 방장산에 올라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다. 해맞이 축제는 새벽 5시 50분 고창공설운동장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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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 있는 레미콘 제조업체. (주)백마는 직원의 복지 증진과 회사의 이익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자 설립되었다. 1997년 12월 10일 (주)백마 공장을 설립하였고, 1998년 9월 29일 KS 표기 인증[제98-0189호]을 취득하였다. 2002년 8월 31일 (주)백마 사업자 및 법인 번호를 변경하였다. 레미콘을 제조하여 관급 공사 현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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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지리는 원래 ‘법줄(法茁)’이라고 불렸으나, 무성한 숲으로 호랑이 피해가 심해 마을을 떠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법(法) 자(字)는 불가(佛家)에서 호랑이를 뜻하고, 줄(茁) 자(字)는 숲이 무성하다는 뜻으로, 줄자를 지(止) 자(字)로 고치면 피해를 면할 수 있다고 하여, 법지(法止)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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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영조 때 와송(窩松) 전덕수(全德秀)가 마을 뒷산에 시묘를 살 때, 송충이가 심해 묘 근처 소나무들이 죽어가자 애통하여 울었더니 까치와 까마귀 떼들이 갑자기 날아와 벌레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다른 곳의 소나무는 죽고 벽송리의 소나무는 푸른 소나무로 남아 있자, 이곳을 지나던 전라남도 영광(靈光) 원(院) 안겸(安鎌)이 ‘벽송(碧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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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고색창연마을체험관 안에 붙은 사진들을 보다가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한테 예전부터도 가평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했냐고 물어 봤다. 그런데 “근년에 관광객들이 마을에 오고 그러니까 시작을 했어요.” 하고 대답을 한다. 호남으로도 불리는 전라도의 전통 문화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라는 차이보다는 동부와 서부의 차이가 훨씬 두드러진다. 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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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에게 복분자에 대해 물으면, 거의 대부분 돈은 돈인데 가시 돋친 돈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분자 농사가 잘만 되면 다른 작물에 비해 높은 소득이 보장되지만, 농사짓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뜻이다. 복분자나무에는 준치 가시보다 더 빼곡하게 가시가 성하다. 그래서 수없이 가시에 찔려야만 비로소 돈이 된단다. 빗물을 머금은 돌담 때문인지 더욱 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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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버스 한 대가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정오 무렵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40여 명의 도시 사람들이 고색창연 가평마을에서 복분자도 따고 영화 촬영도 하는 독특한 체험을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여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고창군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2009년 3월에 개관한 고색창연마을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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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4일 가평초등학교 교정에서 제14회 가평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다.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월간 『한국화보』 11월호에 행사 장면을 실은 여러 장의 사진과 더불어 훈훈한 내용의 기사가 함께 실렸다. 이날 동창회는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따뜻한 식사 대접을 하면서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과 어울려 노래자랑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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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부송리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부송(扶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1800년경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수창(韓秀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서면(一西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풍암치(風岩峙)·부흥동(富興洞)·작산리(鵲山里) 덕림촌(德林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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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세곡리는 좁은 골짜기라 ‘가느실’ 또는 ‘세곡(細谷)’이라고 하였다 한다. 1650년경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천두(文天斗)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세리(西細里)·남세리(南細里)·관동리(冠洞里)·은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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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1년 열두 달 365일 내내 부산하다. 명절도 쇠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력 정월이 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대명절 설이 돌아온다. 이날은 제일 먼저 조상께 떡국을 쑤어 차례상을 차려 놓고 예를 갖춘 뒤,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하거나 세배를 받으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세배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께 먼저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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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용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송촌(松村)과 용암리(龍岩里)에서 ‘송(松)’자와 ‘룡(龍)’자를 따 ‘송룡(松龍)’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의견은 농암리(籠岩里)의 ‘농(籠)’을 ‘용(龍)’으로 잘못 따 송용리가 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현재 행정리로 농암(籠岩)마을이 있고, 마을 이름의 유래가 기록으로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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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7년 8월 3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 67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송한근(宋漢根)이다. 송한룡은 1944년 5월 초 신림면 신평리에 있는 장일선(張日善)의 전답에서 작업 중 주민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제는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는 반일 시국담(時局談)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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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신광사(新光寺)는 1965년 12월 10일에 승려 홍규문(洪圭文)이 창건하였다. 1972년 7월 14일 한국불교 태고종에 등록하였다. 1990년 10월에 진신사리 오층석탑을 건립하였다. 995㎡의 대지 위에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 종각이 있으며, 불상으로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불화로는 신상탱화, 칠성탱화, 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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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신림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평리(新坪里)와 임리(林里)에서 ‘신(新)’자와 ‘임(林)’자를 따 신림면(新林面)이 되었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무장군(茂長郡)과 흥덕군이 고창군에 통합될 때, 일남면·이남면의 대부분과 일서면(一西面)의 일부 지역이 합쳐 신림면이 되어 12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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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고색창연마을에 있는 정자. 농촌 체험 마을로 알려진 고색창연마을은 고씨, 기씨, 유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초가집을 비롯한 옛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마을 남쪽과 북쪽에 각각 건립 연대가 40여 년 차이가 나는 모정 두 채가 있다. 모정은 시정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입구 남쪽 들판에 할아버지 시정이 있고, 마을 북쪽에 새로 지은 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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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풍물 단체. 신림면 수산봉농악단은 2001년 제38회 전라북도민체육대회의 개막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신림면 무림리 가평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평농악단이 설립되었으며, 이후 2004년 신림면 수산봉농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추절과 정월 대보름 행사, 신림면 체육 행사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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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신림면 관할 행정 기관. 신림면사무소는 신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림면사무소가 설치되었다. 무림리·외화리·도림리·덕화리·가평리·신평리·반룡리·세곡리·자포리·송용리·법지리·벽송리·부송리 등 13개리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총무 담당은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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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자포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신림저수지는 고창군의 신림면과 부안면, 흥덕면 일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된 저수지로서, 1952년 착공하여 1956년에 준공되었다. 제방 형식 필댐[죤형]이며, 제방 체적은 7만 5000㎥, 제방 길이는 495m, 제방 높이는 14.1m이다. 총저수량은 327만 4000t, 유효 저수량은 327만 4000t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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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인간을 존중하고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민주 시민의 품성을 기르는 민주인, 스스로 공부하고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을 가진 자주인,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고 질서를 존중하며 봉사하는 생활 습관을 기르는 도덕인, 지식 정보화 사회에 대응하는 기본 역량을 배양하고 창의적·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과학인, 심신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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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법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고 표현하며 개성을 기르는 자주인,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며 창의력을 기르는 창의인, 바르게 행동하며 밝고 맑은 품성을 가꾸는 심미인, 튼튼한 체력을 기르며 건전한 심신을 가꾸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28년 5월 10일 벽신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초대 교장으로 임전격 태랑이 부임하였다.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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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자포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신촌교회는 지역 사회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문헌에 근거한 신촌교회 설립사는 기존의 통설과는 차이가 있다. 마을 주민들이 구전으로 전하는 바와 『고창군지』 등에 따르면 송복겸 장로가 신촌교회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상권[1927] 103~104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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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는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입신리(笠新里)와 해평리(海坪里)에서 ‘신(新)’자와 ‘평(坪)’자를 따 ‘신평(新坪)’이 되었다. 1800년대 경주정씨(慶州鄭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청송리(靑松里)·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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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임[1927년생] 씨가 들려 준 「아기 장수 우투리」는 어릴 적 부모님께 들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정읍시 입암면 천원마을이 고향인 차순임 씨는 부모님이 종종 자식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부인 어머니가 먹을 것이 없어서 뜸쑥[뜸을 뜨는 데 쓰이는 약쑥]을 달여 먹었더니 윗몸만 있는 ‘우투리’를 낳게 된다.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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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감천(感泉). 한림원승지를 역임한 오자귀(吳自貴)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오팽년(吳彭年)이다. 오준(吳浚)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예절을 숭상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8세 때인 1471년(성종 2)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4일을 연명케 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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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외화리는 화룡의 바깥쪽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경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연방(柳延芳)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외화리·내화리(內化里)·구암리(九岩里)·월화리(月化里)의 일부가 병합되어 외화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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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전설의 힘! 오랜 세월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전설은 쇠도 녹일 정도로 힘이 강하다. 더구나 복분자 전설은 힘의 원천인 정력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더욱더 흥미롭다. 한여름 어스름해질 무렵, 당산나무 밑에 모여 앉아 놀고 있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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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고흥유씨(高興柳氏)를 기리는 조선시대 사당. 고흥유씨(高興柳氏)의 사우로서, 일평(一萍) 유필원(柳必源)[1625~1684],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1632~1695], 삼애(三涯) 유덕휴(柳德庥)[1667~1739], 수한(睡漢) 유세기(柳世箕)[1768~1821] 네 효자를 모시고 있다. 일평과 허제 형제는 효가 지극하고 우개가 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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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방장산 자락에 있는 계곡.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신기마을 뒤 방장산 자락에서 흘러온 물이 주요 수원이 되는 용추계곡은 용추폭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추계곡의 대표적인 자연 경관은 용추폭포이다. 폭포의 경관이 아담하고 선녀가 목욕하는 원형의 욕조처럼 보인다.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하상 경사가 90° 이상에 이르는 전형적인 폭포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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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이왕 마을에 왔으면 용추폭포를 꼭 보고 가라고 권한다. 용추폭포는 구가평교를 건너 거창신씨 재실이 있는 용추동을 지나 방장산[높이 734m] 등산로로 접어들어 용추골로 내려가면 금방 나온다. 폭포의 높이는 20여 척에 달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엔 둘레가 20여 척에 달하는 맑은 못이 있다. 동그란 욕조 같은 바위 위로 폭포수가 쏟아져 마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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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90세를 넘어 장수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박사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 손자들까지 합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이 바로 고기상 씨 집이다. 고기상 씨는 현재[2009년] 이 마을에서 매꼬지댁 김기영 씨 다음으로 장수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자식이 딸 둘에다가, 딸 둘에다가 아들 닛[넷]. 아들이 너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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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양수(陽叟), 호는 수한(睡漢). 허재(虛齋) 유혜원(柳惠源)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상현(柳象賢)이다. 유세기(柳世箕)는 가학(家學)으로 한문을 익히고, 성장하자 서당에 나가 경전과 사서(四書)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시문(詩文)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효행의 가풍을 계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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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백(源伯), 호는 일평(一萍). 장사랑(將仕郞) 유봉(柳鳳)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다. 유필원(柳必源)은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글을 배운 뒤 전라북도 논산 출신의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소학(小學)』과 『효경(孝經)』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여 독실한 효심으로 39세 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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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원중(源仲), 호는 허재(虛齋). 세종 때 왕자 사부를 지냈던 경암(敬庵) 유구산(柳龜山)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유영달(柳永達)이고, 양아버지는 유영휘(柳永輝)이다. 유혜원(柳惠源)은 어려서는 형 유필원(柳必源)에게 글을 배웠고, 커서는 고부 선비 권극중(權克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8세 때인 1659년(효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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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 열녀. 이근채 처 흥성장씨는 동학 농민 혁명에 남편이 연루되었다는 명목으로 시아버지가 경군(京軍)에 잡혀가 곤욕을 치르자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시아버지의 석방을 청탁하여 경군의 허락을 받아 냈다. 시아버지가 노환으로 쓰러지자 10여 년 간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1904년(광무 8)에 정려가 내려졌다. 흥성장씨 정려는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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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판오(李判五)이다. 이화백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근로보국대’라 하여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자, 고향에서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등 일제에 반대하는 시국담을 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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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바람이 아직은 덥다고 느껴지던 날, 도동사 뒤쪽 철륭할아버지 옆에 있는 복분자 밭에서 크게 라디오를 틀어 놓고 일을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노부부는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안에 있는 당산할머니 아래에서 마침 복분자를 따서 손수레에 싣고 오는 농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까맣게 잘 익은 복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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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은 부엌에서 모시는 신으로, 부엌의 부뚜막 위에 작은 선반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물 한 그릇을 받쳐 놓는 형태로 모신다. 지금은 부엌을 입식으로 개조하면서 싱크대 위에 물 한 그릇을 받쳐 놓은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조왕은 자식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가신(家神)으로, 집집마다 모두 모셨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조왕을 모시는 집은 따로 있다고 한다. 조왕 역시 오늘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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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포리는 주변 지형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자포실’ 또는 ‘자포(子包)’라고 하였다. 1750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석암리(石岩里)·해암리(海岩里)·해월리(海月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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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자포리 신촌마을에 있는 당산나무. 자포리 신촌마을에는 동서 양쪽에 당산나무가 있다. 30여 년 전에는 그 아래에서 정월 대보름에 주과포혜(酒菓脯醯) 등 제물을 놓고 당산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마을 동쪽에 높이 7m, 둘레 1m 정도의 정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정자나무 밑에 돌로 제단을 마련해 두었는데 이를 상당산(上堂山)이라고 부른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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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고남규 씨와 함께 현재 마을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한 사람이 바로 고복상[1941년생] 씨다. 고복상 씨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4년간 이장을 맡아 마을 일을 했고, 이후에도 반장과 개발위원장과 같은 여러 직함으로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리고 2009년 그의 공식 직함은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이다[2008년 12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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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철륭제ㆍ당산제를 모신 뒤 정월 보름날 아침 마을 광장에 모여 줄다리기할 줄을 만들기 시작한다. 줄은 마을 입구에 있는 광장에서 만드는데, 그 해 상황에 따라서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이 많이 올 때면 당산할머니가 있는 당산거리에서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주로 당산할머니 근처에서 줄을 만들었으나, 올해[2010년]는 마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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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느 집을 막론하고 집 안에는 성주, 지앙, 조왕 외에 다양한 가신(家神)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칠성, 철륭, 조상, 업 등이 그것이다. 가신들에 대한 신앙은 부녀자들의 자발적인 종교적 신심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양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달라서 무질서한 듯해 보이지만, 신앙 행위에서는 그들만의 질서와 공식이 발견된다. 특히 가정 신앙은 무속적 성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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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큼지막하게 ‘가평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서 있다. 방장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갈곡천과 덕화천이 마을을 사이에 두고 흐르다 마을 앞 들판에서 몸을 섞는다. 바로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벼농사와 복분자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슬쩍 지나쳐서는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는 곳! 가평마을이 딱 그렇다. 가평마을에는 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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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동복오씨 문중의 사당. 창효사(彰孝祠)는 성종 때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감천 오준(吳浚)[1444~1494]과 오시정(吳詩挺)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오준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그의 효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오준의 효성에 감동한 하늘이 시묘살이 하던 자리 옆에 갑자기 벼락을 쳐서 청수(淸水)가 솟으니 이를 효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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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자포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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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우물. 조선시대 인물 감천 오준(吳浚)[1444-1494]의 효가 지극하여 유림들이 추모하는 의미에서 우물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효감천이다. 또한 유림들은 사당을 짓고 사당 명칭을 의논하던 중에 벌레가 대나무 잎에 ‘창효(彰孝)’라는 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보고 창효사(彰孝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효감천은 1980년 3월 8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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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대표적인 유가적 윤리관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여 다양한 이야기로 전승되며 민중들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관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효에 대한 가치 추구는 특정 양반 계급이나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민족적 이념으로 승화되어 있는데, 그래서도 효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있고, 양적으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