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61 |
---|---|
한자 | 林魯泰 |
영어음역 | Im Notae |
이칭/별칭 | 관오(冠五),흥남(興南)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백양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유학자 |
---|---|
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
성별 | 남 |
생년 | 1854년 |
몰년 | 1932년 |
본관 | 평택 |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관오(冠五), 호는 흥남(興南)이다. 1854년(철종 5)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 백양마을에 있었다. 송호(松湖) 임박(林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경제(林敬齊)이다.
[활동사항]
임노태(林魯泰)는 어린 시절 종형인 노하당(蘆下堂) 임노성(林魯聲)에게서 글을 익혔다. 이후 연상(蓮上) 안중섭(安重燮)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학문을 넓히고 경서에 통달하여 많은 후학들이 모여들었다. 제자들이 성금을 거두어 서재를 건립하고 물한정(勿閑亭)이라 이름 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1910년 총독부에서 은사금을 내려 회유하려 했으나 거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그가 남긴 저서들은 모두 6·25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흥남임선생문인록(興南林先生門人錄)』은 임노태의 문인 299명을 기재한 책으로, 후손이 정리하여 물한정에서 1963년 발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