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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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球村時代多文化共同體-安山 |
영어의미역 | Multicultural Community and Ansan in a Global Village Age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태정 |
[개설]
한국 경제가 한창 개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즈음인 1980년대 안산은 ‘공단’ 도시였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 지역의 인구 과밀 해소와 산업 분산을 위해 1977년 반월공업단지를, 그리고 1986년에는 시화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 자연스레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안산으로 모여들면서 신도시 안산은 ‘공단’ 배후도시로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내 ‘공단’은 안산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공단 도시에서 다문화 공동체 도시로]
1980년대 안산 지역에서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는 공단 맞은편에 있는 단원구 원곡동과 선부동, 초지동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지하철 4호선 안산역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방을 얻을 수 있는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원곡동 일대의 주택단지는 인근 반월공업단지와 시화공업단지가 가까울 뿐 아니라 대부분이 맞벌이로 일하는 젊은 부부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어 인기가 좋았다.
최소한의 경비만을 들여서 자녀의 연령대 별로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비영리 탁아소라든가 노동상담소 등은 안산 지역 거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해 자생적으로 발전·운영된 대표적인 민간 복지 시설이었다. 여기서 지역 주민들은 당시 노동 활동가들과 자원 활동가들을 매개로 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맛보기 어려운 공동체적 나눔과 도움의 문화가 신도시 안산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하겠다.
신도시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외지인이다 보니 지방 행정도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을 높이는 쪽으로 관심이 기울었다. 관공서와 행정기관들은 지역 주민에 대한 통합과 정체성 부여를 위해서라면 민간단체 및 시민사회와 손을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1980년대 안산이 공단과 노동자의 도시였다면, 1990년대 이후의 안산은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참여형 도시라 할 수 있다. 전국 여느 곳보다도 많은 수를 자랑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이들이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서로 연대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는 곳. 안산시가 가진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서 존재한다.
[지구촌 축소판이 된 다문화 공동체]
사전적 의미의 공동체(共同體)[community]란 ‘같은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유기체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같은 환경이란 자연환경이나 자원과 같은 물질적인 요소에서부터 가치관이나 신념,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화와 같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영역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공동체라는 말은 그 속에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작은 ‘마을’을 지칭할 때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말할 때에도, 또 세계화가 확산되고 있는 ‘지구 사회’에도 공동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이 ‘지구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안산이다. 전국 각지의 이주민들로 주민의 대부분을 채웠던 안산시는 이제 지구 환경의 변화와 함께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이주민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안산이 보유한 공단이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2009년 4월 현재 단원구 원곡동만 해도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등록 외국인 수는 55개국 1만 6499명으로 내국인 2만 4079명의 68.6%를 차지하며, 미등록 체류 외국인을 포함하면 3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등록 외국인의 수가 전체 인구 대비 1.8%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거리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안산역과 주변 주거 지역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상점가 또한 한국인이 떠난 자리를 채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각종 식당, 술집, 노래방 등의 유흥 시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간판으로 바뀌었다. 중국어,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와 아랍어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말 현재 이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국제상점의 수는 중국식당 50여 개, 중국식품점 20여 개에다 인도네시아·파키스탄·스리랑카·네팔·이란·베트남·러시아 등의 음식점 및 식품점을 합치면 대략 110여 개이며, 그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국제상점 이외에도 이주민들을 주 소비자로 하는 휴대폰 대리점, 전화방, PC게임방 등도 증가하고 있다. 2009년 5월에는 정부가 ‘국경없는 마을’로 불리는 일대 지역을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하였다.
국경없는 마을의 다른 이름이 다문화 공동체[multicultural community]이다. 하나의 국적이나 민족, 인종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주민과 원주민들이 ‘함께 살기’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천의 ‘화교촌’, 부산의 ‘상해마을’, 서울 방배동의 ‘프랑스인마을’과 동부이촌동의 ‘일본인촌’, 가리봉동의 ‘옌벤동[조선족 마을]’과 구분되는 안산시만의 특성이다.
외국인, 아니 ‘주민등록증이 없는 거주민’들에게 안산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모국어로 된 신문과 TV를 접할 수 있는 곳, 모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식자재까지도 구입할 수 있는 곳, 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들에게는 고달픈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풀어주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한편, 내국인에게 안산은 아시아 각국의 문화와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먹었던 음식이 생각날 때, 한국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지구촌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통해 ‘또 하나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을 때 안산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변화와 관계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역 토박이 주민들에게는 자신이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생동감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갈등을 넘어 소통과 협력으로]
국경없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거리 청소 및 환경 정비 사업, 다문화축제, 체육행사 등 외국인과 한국인, 이주민과 원주민 등 지역 주민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 등이 연중무휴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곡동의 원주민들도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에 많은 불만과 어려움을 토해 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 종량제가 무색하게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좋지 않은 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진 것을 실감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곧 이주민들이 점점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며, 소비자이자 세입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나’와 같은 인간,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 즉 ‘우리’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먼저 손을 내미는 일도 쉬워졌다. 국경없는 마을에서는 시민단체, 관공서 관계자, 그리고 이주민 공동체, 원주민협의회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마을의 치안과 복지를 위해서,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리이다. 국경없는 마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 간의 이해와 소통, 그리고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의 그늘을 넘어서]
한국의 다문화적 상황은 서구 사회처럼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지속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말에 갑작스레 등장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낯선 상황에 대해서 호기심과 동시에 적개심을 갖기 마련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이주민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주민이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하는 저숙련·저임금 노동자이다 보니 적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대로 보고 차별하거나 무시를 하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저개발 국가에서 왔다고 해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미개인’이라는 편견도 쉽게 드러낸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 불황의 그늘이 한국 사회까지 덮치면서 그 어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어느 지역보다 앞서 이주민과 ‘함께 살기’를 모색해 온 안산 지역은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다문화 도시 안산의 특별함이 오히려 새로운 국경을 만들어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고립된 ‘섬’이 되지는 않을까? 외국인 범죄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제일 먼저 안산시로 향한다는 사실이 안산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그러한 부담이 점점 안산을 대한민국에서 배제된 지역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혼인 이주를 통해 한국에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농촌 지역 이주민들과 달리, 안산의 이주민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이주를 거듭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다문화적 관계 형성’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안산시는 긍정적인 답변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구축해 온 안산만의 노하우는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또한 국경없는 마을의 경험을 통해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함께 살기의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는 점도 성공적인 도시형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 장점이다. 따라서 안산시의 다문화공동체는 지역 사회의 현실적인 필요에서 출발한 ‘함께 하기’가 지구촌 시대의 도시형 ‘공동체’로 태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공동체의 싹을 어떤 나무로 자라나게 하느냐에 있다. 과실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안산 지역 주민 전체가 힘을 합쳐 외부로부터의 위험에서 지켜내는 것은 물론 소통과 이해라는 토양이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구촌 시대의 공동체형 도시, 안산]
21세기를 일컬어 지구촌시대라고도 한다. UN에 가입한 국가만 따져도 200여 개 나라가 있고, 2009년 2월 현재 사람 수로 보면 67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진 지구에다 하나의 마을 또는 촌락을 의미하는 ‘촌[village]’이라는 작은 단어를 하나 덧붙였다. 해외여행과 유학, 이주가 활발해지고, 인터넷을 통해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람이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교류하고 있는 현실에서 탄생한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1년에 1억 이상의 인구가 모국을 떠나 국경을 넘는다고 하니, 사람들의 생활의 거리는 이미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공동체는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 개개인이 내가 누구인지, 남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공동체는 이미 구성된다. 요컨대 공동체란 함께 모여서 사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구성원을 전제로 하는 다문화 공동체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 그 자체이다. 다문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느슨한 고리는 ‘참여하기와 끌어안기’라는 실천을 통해서 견고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이 다른 곳보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한, 내가 사는 이곳이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기를 바라는 한 자발적인 노력이 계속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동체는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 그리고 다른 공동체들과의 상호교류를 통해 성장한다.
국적을 가릴 것 없는 이주민의 도시로서 안산은 현재 다문화 공동체의 잠재력과 가능성이란 실험대에 서 있다. 신도시 형성 과정에서 자라난 지역 주민 간의 연대의식, 그리고 ‘국경없는 마을’ 경험을 통해 풍부해진 다양성과 자발성, 협력과 소통의 경험은 이 실험대에 충분한 양분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