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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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목현(金穆鉉)[1885~?]은 1885년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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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지리(晩智里)에는 처음 문화 유씨(文化 柳氏)가 정착하였으며, 이후 영월 신씨(寧越 辛氏)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정착하는 곳이라 하여 만지울 또는 만지동(晩智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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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복심리(福深里)의 복(福) 자와 상금리(上金里)의 금(金) 자를 따서 복금리(福金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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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1종 저수지. 복심저수지(福深貯水池)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 임천군 가화면 복심리에 속하였으므로 ‘복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14년 이후 임천군이 부여군에 합병되면서 복심리와 상금리가 복금리로 합쳐졌으나, 저수지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 걸쳐 있으므로 충화저수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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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수리조합 설치에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 저항운동. 수리조합반대운동(水利組合反對運動)은 일제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과 충화면에 수리조합을 설치하려 하자 충화면의 복금리와 만지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저항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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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래(林宗來)[1875~1959]는 1875년 11월 26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에서 태어났다. 1928년 2월 부여군 임천면과 충화면에서 수리조합을 시행하려 하자, 임종래는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서 김목현(金穆鉉) 등과 함께 수리조합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 1928년 2월 10일 지주와 거주민들을 회합하여, 임천면장에게 수리조합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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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상지석리(上支石里)와 하지석리(下支石里)를 병합함에 따라 지석리(支石里)라 하였다. ‘지석’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있는 고인돌, 즉 백제 삼충신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사비성으로 갈 때 바위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충성을 맹세하였다고 전하는 표충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고인돌이 있기 때문이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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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상지석리(上支石里)와 하지석리(下支石里)를 병합함에 따라 지석리(支石里)라 하였다. ‘지석’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있는 고인돌, 즉 백제 삼충신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사비성으로 갈 때 바위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충성을 맹세하였다고 전하는 표충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고인돌이 있기 때문이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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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팔충면(八忠面)의 충(忠) 자와 가화면(可化面)의 화(化) 자를 따서 충화면(忠化面)이 되었다. 팔충면은 백제 시대 성충·계백 등 8명의 충신들이 출생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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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서 발원하여 충화면과 임천면을 거쳐 임천면 칠산리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 칠산천(七山川)은 발산을 적시는 냇물이라 하여 발산천(鉢山川) 혹은 오목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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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국 지명 조사철』 기록에 따르면 ‘팔충’이란 백제 말의 여덟 충신이 팔충리(八忠里) 출신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팔충신이란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 복신(福信), 도침(道琛)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