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041 |
---|---|
한자 | 烏山 |
영어공식명칭 | Osan |
이칭/별칭 | 오산(吳山),오석산(烏石山),오적산(烏積山)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염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중환 |
전구간 | 오산 - 충청남도 부여군 |
---|---|
해당 지역 소재지 | 오산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염창리 |
성격 | 산 |
높이 | 180ⅿ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염창리에 걸쳐 있는 산.
[개설]
오산(烏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염창리에 걸쳐 있는 180ⅿ의 산이다. 백제 사비기에 신성시되었던 삼산(三山), 즉 오산(吳山), 부산(浮山), 일산(日山) 가운데 한 산으로서, 국토를 수호하는 상징적인 산으로 기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해동지도(海東地圖)』를 참조하면 염창리 뒤에 있는 180m의 산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南扶餘 前百濟 北扶餘)」 조에 “산이 세 개가 있어서 곧 일산·오산·부산이라고 하는데 백제가 전성(全盛)하던 때에는 신(神)들이 세 산 위에 살면서 서로 날아 왕래하기를 조석으로 끊임이 없었다”라는 기록이 있어, 오산이 중요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50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海東地圖)』「부여현」 조에 오산(烏山)이 부여현에서 석성현(石城縣)으로 나가는 길목 옆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오산을 염창리 뒤에 있는 180ⅿ 높이의 산으로 본다면 오산은 부여의 진산(鎭山)인 부소산에서 보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된다. 성의 외곽을 둘러싼 외성인 부여 나성(羅城)에서 보면 백제의 왕릉 구역인 능산리 고분군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오산은 동나성, 나성 동문, 능산리 사지, 능산리의 왕릉들과 가까워 사비 백제 왕도의 중요하고 상징적인 제사 등의 의례 공간에 해당하는 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성한 의미를 지닌 삼산의 개념은 백제가 부여로 수도를 옮긴 성왕 대에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산에서 산신들을 숭배하는 제사 체계가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며, 산천제의(山川祭儀) 체계는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고 국토를 사방에서 수호하는 기능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명칭 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지리지에는 ‘오산(吳山)’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오산(烏山)’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부여 관련 지도에도 ‘오산(吳山)’이란 명칭은 없고 ‘오산(烏山)’이란 명칭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오산(吳山)’이 뒷날 ‘오산(烏山)’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오산은 오석산(烏石山) 또는 오적산(烏積山)으로도 불리는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자연환경]
오산은 부여군의 동남부 구릉 지대에 속한다. 동남부 구릉 지대는 옥산면에서 금강을 건너 석성면과 초촌면의 북부에 이르는 동안 연속적인 띠 모양을 이룬다. 해당 구릉 지대는 저위 평탄면[삭반 침식면]의 범주에 해당한다.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 분포 지역으로 산 사면이 완만하여 100m 정도의 낮은 저산성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심층 풍화된 기반암 위에 형성된 산록 완사면과 삭박 평탄면의 사이를 개석(開析)한 하천 연변에 주로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황]
오산은 월명산과 산지가 이어져 있어, 오산 정상 부근에는 월명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오산을 오르는 길에 다른 운동 시설 등은 없으며, 오산 정상에 산불 감시탑이 있다.
오산이 있는 부여군은 온대림 지역에 속한다. 자연 상태의 온대림에서는 신갈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 등의 참나무류를 주임목(主林木)으로 하는 낙엽활엽수림이 우세하게 나타나며, 하층 식생으로 진달래·철쭉·싸리나무 등의 관목이 자란다. 그러나 오산은 소나무 등의 침엽수와 각종 활엽수가 혼효림(混淆林)을 이루는데, 6·25 전쟁을 거치며 부여 지역을 포함한 충청 및 호남 지방의 삼림이 심하게 훼손되어 인위적으로 조성한 리기다소나무숲의 영향으로 보인다.
오산 부근에서 백제 토기와 불상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