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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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前里靑松沈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나실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14가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에 있는 청송 심씨 집성촌.
[개설]
대전리 청송심씨 집성촌은 대전리 나실마을에 있는 청송심씨 세거지이다. 청송심씨는 경상북도 청송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청송심씨의 시조는 심홍부(沈洪孚)로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위위시승(文林郞衛尉寺丞)을 역임하였다. 4세손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 조선 개국공신으로서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청성충의백(靑城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오면서 세 명의 왕후와 네 명의 부마를 배출한 조선의 세도가문이 되었다.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으며,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그의 후손들도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하였다.
[명칭 유래]
나실마을은 과거에 나곡 또는 날개 모양의 골짜기를 뜻하는 익곡(翼谷)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나실마을은 심원부의 7세손인 모의(募義) 심정(沈汀)[1568~1592]이 입향하였다. 심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창의(倡義)하여 25세에 탄금대에서 전사하였다. 나실마을에 거주하는 청송심씨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43가구가 희성인 청송정씨로 잘못 기록되어 있고, 1992년에는 청송심씨가 40가구였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홍원리와 용전천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감연리, 남쪽으로는 서넘티로 현동면과 경계하고 북으로는 주왕산면 상평리와 접하여 있다. 나실마을은 높이 540m 정도의 낮은 능선으로 둘러싸인, 사발처럼 오목한 분지이다.
[현황]
2017년 현재 마을 전체는 약 30가구이며 청송심씨는 14가구 정도이다. 1992년에는 청송심씨가 40가구였다. 마을 전체가 인구가 감소하였으나, 청송심씨 세거지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나실마을에서는 음력 시월 초열흘에 익야정(翼也亭)에서 문중 제사를 지낸다. 대전리에는 익야정 외에도 입향조 심정을 모시는 모의재(募義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