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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된 후 일찍이 중부권 문화의 선진 지역이었고 의병항쟁의 고향이었던 충주에서는 다양한 갈래의 항일운동이 그치지 않았다. 당시의 항일운동은 결국 국권을 회복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기에 엄정섭(嚴正燮)은 충주 출신으로 광복단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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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수원(水原). 호는 운암(雲庵). 증조할아버지는 백후진(白厚鎭)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백명수(白命洙)이다. 아버지 백낙성(白樂成), 어머니 여양진씨(驪陽陳氏) 진성임(陳聖任)이다. 백남규는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진위대 부위(副尉)로 근무했다. 1907년 여름의 군대해산 이후에 동지를 규합하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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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대구(大邱). 할아버지는 서회보(徐晦輔)이며, 아버지는 서중순(徐重淳)이다. 서상경은 청주농업학교에 다니던 중에 3·1운동에 가담하여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등사하여 배포하다 체포되어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이강하, 이윤희 등의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면서 고향인 충주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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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기의 본관은 대구(大邱)이고, 아버지는 서병창(徐炳昌)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에 유학한 서상경(徐相庚)의 영향을 받아 1925년경부터 인간의 절대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며 국가를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충주에서 서상경 등 3인의 동지와 회합하고, 서울에 올라가 아나키즘 계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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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승억의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아버지는 손석우(孫錫祐)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웃 신청리의 단경옥(段慶玉), 이희갑(李喜甲), 이강렴(李康濂) 등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등사하였다.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龍院里) 장날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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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정섭은 1885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면 은곡리로 이주하였다. 충청남도 광복단 지부장이 되어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과 무기류를 공급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917년에는 친일파 장승원을 처단하고 친일분자들에게는 각성의 뜻으로 경고문을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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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돈상의 본관은 고흥(高興). 할아버지는 유홍석(柳弘錫)이며, 재종조는 유인석(柳麟錫)이며, 아버지는 유제원(柳濟遠)이며, 어머니는 윤희순(尹熙順)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11년경 할아버지 유홍석과 아버지 유제원(柳濟遠), 어머니 윤희순(尹熙順)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만주, 몽고, 중원에 흩어져 있는 애국자들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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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석현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일경의 추적을 받자 같은 해 11월 만주로 건너갔다. 1920년 7월 3·1운동 과정에서 채택한 비폭력적인 수단을 반성하면서 김원봉(金元鳳)이 결성한 의열단(義烈團)에 가담했다. 1922년 2월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입국하였고, 같은 해 12월에 김지섭(金祉燮) 등과 함께 서울 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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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문화(文化). 평양감영 주사(主事)를 지낸 유전의(柳全義)의 증손이다. 할아지는 유개원(柳開源)이며, 아버지는 유종근(柳鍾根), 어머니는 이근흥(李根興)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유자명은 1919년 삼일운동 당시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 중심의 시위를 준비하다가 사전에 탐지되자 상해로 망명하였다. 망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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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희순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아버지는 윤익상(尹翼商)이며, 남편은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이다. 윤희순은 1895년 단발령(斷髮令) 이후 한말의 저명한 척사사상가인 시할아버지 유중교(柳重敎), 의병론자인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 남편 유제원(柳濟遠) 등 시택인 고흥유씨(高興柳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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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치의(李致儀)이며, 생부는 이형의(李衡儀)이다. 이기진은 20대 초에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장담마을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화서학파에 입문하였고, 유중교 사후에는 장담마을의 선비들을 이끌던 유인석(柳麟錫)을 좇았다. 명성황후가 일본군에게 피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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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천의는 1930년 1월 신간회 청년지하운동 단체인 선무부에 가입하여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체포령을 피해서 1931년 2월 만주 용정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4년 1월 흑룡강성 북안진 전가둔에서 일본국경경비대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1934년 5월 풀려나서 흑용강성 하리치커우 한국인 농가에 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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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정시항은 충청북도 음성군의 금광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1907년 여름에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강제로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 의병에 투신했다. 이인영이 이끄는 관동의병진에 속했던 정봉준(鄭鳳俊)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가담한 후 충주의 노은면 전투, 음성의 사장(射場)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정봉준 의병장을 따라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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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지산(志山). 아버지는 정운한(鄭雲漢)이다. 정원택은 1911년 김교헌(金敎獻)·김유근(金柳瑾)을 만나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상해로 건너가 신규식(申圭植)이 이끄는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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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계운(桂雲)·백양(白洋). 아버지는 정낙중(鄭洛中)이다. 정태희는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평양에서 동지들과 함께 대한국민총회(大韓國民總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농민들의 지식을 개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그해 12월 상해로 망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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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찬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이강년 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통화현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창생 신용관(辛容寬)과 같이 백서농장(白西農場)을 경영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3·1운동 이후 서로군정서에 들어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평안북도 강계군 문옥면주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