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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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神- |
이칭/별칭 | 걸립,걸궁,고사반,고사풀이,매귀,매귀굿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육민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 무렵에 지신에게 고사를 올리는 풍습.
[개설]
지신밟기 는 도봉구의 주민이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터를 지켜 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올리고 풍물을 울리며 축복을 비는 세시 풍속이다. 이를 걸립(乞粒), 걸궁, 고사반, 고사풀이, 매귀, 매귀굿 등이라고도 한다. 지신밟기는 마을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며 지신을 달래어 한 해를 무사하게 보낼 수 있기를 빌어 준다. 지신밟기는 땅을 밟으면서 잡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 내용의 덕담과 노래로 하는 의례, 각각의 신을 위로하려는 뜻으로 하는 풍물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꽹과리·북·장구·태평소 등의 민속 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앞세우고, 소고 패·양반·각시·포수·머슴 등의 배역이 뒤따른다. 당산굿 및 우물굿을 한 뒤에 마을 사람들 각각의 집을 방문하여 ‘고사 소리’를 하고 춤과 익살로 놀이판을 벌인다. 그러면 집주인은 음식이나 곡식, 돈으로 이들을 대접한다.
[연원 및 변천]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권2에는, 형식과 연희 시기가 다소 다르지만 민간에서 잡귀를 쫓아내고 복을 부르는 의례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지신밟기와 똑같지는 않지만 공동체 제사 의례의 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30년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오청(吳晴)의 『조선의 연중행사』에는 지신밟기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나온다. 매년 같은 시기에 지신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축복을 받으려는 신앙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절차]
지신밟기 과정을 보면, 전반부는 상쇠를 비롯한 지신밟기 패가 대문으로 들어와서 장독대, 곳간, 마구간 등 실외에서 의례를 진행한 뒤에 부엌, 대청마루, 안방 및 각 방 등의 순서로 차츰 실내의 깊은 공간으로 들어가 의례를 진행한다. 그 뒤 다시 마당으로 나가 오락적 성격이 강한 놀이판을 벌여 기량을 과시하고 웃음을 유발하며, 구경꾼은 이를 즐기는 과정이 이어지고, 끝으로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고 제물을 거두어 밖으로 나가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지신밟기 패는 ‘지신밟기’라고 쓴 기가 가장 앞서고, 농악대와 가장행렬이 뒤따른다. 가장행렬 중에는 사대부와 팔대부(八大夫), 포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대부와 팔대부는 커다란 관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점잖게 걸으며 맨 앞에 서고, 그 뒤에 포수와 여러 탈을 쓴 사람들이 따른다.
이들은 맨 먼저 그 마을 주산(主山)을 찾아가서 서낭당 앞에서 ‘주산 지신풀이’를 하고, 마을로 들어와서는 각 집에 들어가 지신밟기를 한다. 찾아간 집 대문 앞에서 일행은 “주인, 주인 문 여소.” 하고 악기를 울리면 주인이 맞아들인다. 우선 마당에서 ‘마당놀이’를 하고, 이어 대청(大廳) 앞에서 ‘대청지신풀이’를, 다음에 큰방 앞에 와서 ‘큰방성조풀이’를, 다음에는 각 방 앞에서 ‘각방치장풀이’를, 부엌 앞에서는 ‘부엌[조왕] 지신풀이’를, 우물 앞에서는 ‘우물[샘] 지신풀이’를, 장독 앞에서는 ‘장독 지신풀이’를, 곳간 앞에서는 ‘곳간 지신풀이’를, 뒷간[변소] 앞에서는 ‘뒷간 지신풀이’를, 대문 안쪽에서는 ‘대문 지신풀이’를 하고, 마지막으로 ‘주신(酒神)풀이’를 한다. 이 주신풀이를 마치면 음식이 나온다.
지신을 밟을 때에는 반드시 “좋고 좋은 지신아 잡귀(雜鬼)·잡신(雜神)은 뭍 알[아래]로, 천행만복(千幸萬福)은 이 집으로!”라고 소리를 하면서 그 집의 마당, 부엌 또는 광에서 밟고 걸으며 춤을 춘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마을의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서 마을 유지나 상가에 찾아가 지신밟기를 해 주며 곡식이나 돈을 얻어 내는 일을 지신밟기, 걸립 혹은 두레패 놀이라 했다. 걸립은 쌀을 얻기 위하여 다른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를 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인데, 쌀알[粒]을 얻기 위한 일[乞]이라는 뜻이다. 전체적인 진행은 마을 전체를 위한 의례를 한 뒤,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였다.
지신밟기 는 마을과 가정의 안녕을 빌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시행되었는데,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의 공동 활동비를 충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신밟기의 연희적 특성으로 인해 마을과 각 집이 축제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 활발해질 무렵부터 지신밟기는 급격히 쇠퇴해지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