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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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龍里 |
영어음역 | Daery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김산군 대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다수동의 이로리 일부, 파미면 하지리 일부, 행정(杏亭), 용복(龍伏)이 통합되어 김천군 대항면 대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항면 대룡동이 되었고, 1971년 반곡(盤谷)이 대룡1동, 용복·행정이 대룡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대룡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대항면 대룡리가 되었다.
[현황]
대룡리는 대항면 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대항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53㎢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69세대에 692명(남자 353명, 여자 33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다수동과 이웃하고 남쪽은 정골저수지와 덕대산을 등지고 있다. 북쪽으로 국도 4호선과 경부고속국도가 지난다. 대룡1리·대룡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김천 최대의 포도 산지로 대부분의 농가에서 포도를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김시창 효절각이 있었으나 봉산면 신암리로 옮긴 후 터만 남아 있다.
자연 마을로는 반곡·행정·용복 등이 있다. 국도 4호선 변에 있는 반곡은 동쪽으로 다수동과 접하고 남쪽으로 덕대산 자락인 오룡산(五龍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부터 김해 김씨가 집성을 이루어 왔다. 처음 마을이 형성될 때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하다가 들판 한복판에 있는 마을 형상이 마치 밥상처럼 생겼다 하여 ‘소반 반(盤)’자에 ‘골 곡(谷)’자를 써서 반곡이라 하였다.
반곡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9일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배동지제(裵冬至祭)라는 특이한 동제를 지낸다. 일제 강점기에 자손이 없이 죽은 배씨 성을 가진 마을 주민이 약 1,983.48㎡의 땅을 동네에 기증하자 이를 고맙게 여긴 주민들이 매년 고인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
행정은 1800년대 초 김해 김씨 일가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심은 은행나무가 정자 구실을 하므로 ‘은행나무 행(杏)’자에 ‘정자 정(亭)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은행나무가 일대의 명물로 자리 잡으면서 어룡정(魚龍亭)으로도 불리어 마을 이름도 어렁정이 또는 어렁지로도 불렸다. 마을 북쪽 하천 변에 있던 은행나무는 1936년 수해 때 유실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용복은 1810년 전주 이씨 이승주(李承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 인근 오룡산에 사는 다섯 마리 용 가운데 한 마리가 내려와 마을에 엎드려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룡산에 사는 다섯 마리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오룡주(五龍珠)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바위가 마을 맞은편 들판에 있었는데 1970년대 말 경지 정리를 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이에 마을 청년회에서 1989년 덕대산에서 자연석을 가져와 ‘五龍珠’라 새겨 마을 입구에 이정표를 겸하여 세웠다. 당시 여의주 바위가 있던 곳은 여의밭골로 불리었다.